아하~ ‘전례공간’
시대에 따른 성당의 변천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여행이나 순례를 다니면서, 사제라서 그런지 지역의 성당들을 찾아가 앉아서 묵상하고 공간을 살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역사가 긴 유럽의 성당들은 시대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배치와 장식 등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성당의 형태에 따라 신앙의 형태가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신앙의 표현 방식이 달라져서 성당의 형태가 바뀐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한 영국 전 총리 원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성당과 신앙의 상호호환적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표현 장소이면서 동시에 신앙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성당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의 집회소가 하느님 백성의 예배 장소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택과 다른 작은 장소들을 빌려 전례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로마 제국의 건축 양식도 차용했습니다. 특히 두 가지 고대 로마 건물 유형, 곧 사람이 모이는 직사각형의 홀 건물 유형으로 ‘왕의 홀’이라는 의미인 바실리카(basilica)와 ‘영묘(靈廟, 마우솔레움 mausoleum)’라는 원형의 건물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은 대체로 세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로마시대의 장대하고 화려한 건축에 비교하면 참으로 신중하고 간소했습니다. 둘째, 제대를 향해 움직이는 동적인 건축 공간(현관, 중정인 아트리움, 성당 입구의 전실(前室), 중랑, 제대)은 그리스도교의 동적인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해 주었습니다. 셋째, 성당의 위에서 내려오는 빛은 대리석과 모자이크 벽화 등으로 더욱 확산되어 주님을 향해 둘러싼 우리를 위에서 비춰주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당들에서는 로마의 성 클레멘스 성당과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이 있습니다.

돔과 모자이크 예술의 절정인 비잔티움 성당의 탄생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옛 그리스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서 발전한 비잔티움 성당의 특징은 그리스의 예술에 로마의 기술과 공학이 합해지고 이에 동방의 색채와 신비주의가 더해진 것입니다. 비잔티움 성당은 돔 건물(구조), 장식 체계(장식), 평면과 전례(기능)라는 점에서 다시 구상되었는데,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는 이 세 가지가 종합된 최고의 걸작입니다. 비잔티움 성당 건축의 열쇠는 돔이라는 둥근 지붕이었고, 이는 본래 고대 로마(미네르바 메디카 사원, 판테온 등)에서 유래했습니다.

돌과 성인 공경, 그리고 종탑의 로마네스크!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은 11~12세기의 현상이고, 이 용어는 ‘고대 로마 스타일’이라는 뜻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의 지붕은 목재로 만들어져서 회중석의 폭도 한정되었고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으며, 화재에도 취약했기에 로마네스크 성당은 넓고 높은 공간을 만들고 그 위를 돌로 만든 지붕으로 덮으려 했습니다. 건축적으로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긴 축, 교차 볼트, 반원의 아치 등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긴 축을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에서, 교차 볼트는 로마 목욕탕에서, 반원의 아치는 일반적인 건물에서 받아들인 것이지요. 
로마네스크 성당의 가장 큰 공간적인 특징은 어둡고 중량감이 있는 내부공간으로 두꺼운 벽에 뚫린 작은 창에서 빛이 들어와 견고한 돌바닥과 벽 위를 자유로이 비추는 모습을 통해 더없는 거룩함을 느끼게 됩니다. 창이 작고 벽이 넓어서 전례에서 사용하는 라틴어를 못 알아듣는 신자들을 위해 교리교육적 차원의 성경과 교리가 벽화로 그려졌습니다. 
순교한 성인의 유해 공경이 발전하면서 제대 아래나 제대 안에 유해를 봉인하거나 지하 경당을 지어서 그곳에 유해를 모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교의 자리가 원형 제단의 중심이었던 예전의 전례 공간이 제대가 중심에 놓이면서 주교의 자리는 측면으로 이동했습니다. 성인의 유해가 있는 성당을 찾아다니는 순례객들을 위해 제대 주변에 경당을 방사형으로 배치했고, 이 경당들을 연결하는 큰 반원형의 주보랑이 생겼습니다.

‘돌의 벽’을 ‘빛의 벽’으로 전환한 고딕!
농업혁명이 일어나 상업이 발전하면서 상인과 장인이 도시에 모여들면서 12세기에는 도시가 급속하게 확대되었으며,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발전하여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44년 파리 근교의 생드니 수도원 부속 성당의 동쪽 제대 뒷부분을 고쳐서 7개의 방사형 경당을 두었고,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경당 벽 전체를 대신하면서 고딕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찬란했고, 돌로 된 벽은 ‘빛의 벽’으로 바뀌었다”라는 김광현 교수님이 ‘성당, 빛의 성작’에서 표현한 문장은 로마네스크가 ‘돌의 벽’으로 상징된다면, 고딕은 ‘빛의 벽’으로 상징될 수 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고딕 대성당에는 두 개의 힘이 작용하는데, 하나는 제단을 향한 힘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한 힘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기술적 요소는 ‘교차 리브 볼트’, ‘첨두 아치’, ‘플라잉 버트레스’입니다. 이를 통해서 지붕이 가벼워지고, 이를 받치는 벽도 얇아지며 기둥도 가늘어졌습니다. 그래서 얇아진 벽에 ‘스테인글라스’가 자리할 수 있게 되어 성당을 초월적인 빛의 세계로 만들게 되었지요. 고딕 성당의 특징 중 하나가 ‘장미창’으로, 이는 그리스도를 빛의 아들로 표현하고, 중앙에 군림한 그리스도로부터 열두 개의 바퀴살로 방사하는 12사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다는 의미입니다.

20세기 초에 교회를 쇄신하고자 나타난 ‘전례 운동’은 교회 전례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참여하게 해서 전례를 정확히 알게 하자는 움직임입니다.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 개혁을 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이런 영향은 성당 건축에서 반영되어 ‘전례 헌장’ 124항에서 “성당 건축에서는 전례 행위의 실행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확보에 적합하도록 힘써 배려하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현대 교회가 바라는 성당 건축은 과거의 어떤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강조하거나 새로운 예술적 창작물로서의 성당 건축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전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그 전례가 올바르게 거행되며, 그 거행되는 전례에 하느님 백성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을 형성하고 배치하는 성당 건축을 추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