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단원과
겸손에 대한 토론
문민애 안젤라 대구 욱수성당 평생 동정녀 Pr. 단장

오래전에 나는 어떤 수녀원에서 열고 있던 성경학교에 입학한 적이 있다. 입학식 첫날 수녀님께서 루카복음 19장에 나오는 자캐오 이야기를 읽고 자캐오의 구원에 관하여 느낀 점을 써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본문을 여러 번 읽어본 후 다음과 같이 답을 썼다.
“자캐오의 구원은 그가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키 작은 자신이 많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군중을 앞질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만약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뵙지도 못했을 테고 그리되면 구원은 요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주 모범답안 발표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자캐오의 구원은 그가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무 위에는 100년을 앉아 있어도 구원은 없다. 다시 말해 구원의 자리는 낮은 자리, 겸손의 자리다. 높은 자리, 교만의 자리는 구원의 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때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하며,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가 예수님께서 “얼른 내려오너라” 하시면 “예”하고 내려오면 되는데 수녀님께서 너무 많이 나가신 게 아닌가 투덜거렸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생각해 보니 수녀님 말씀이 백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이라는 덕이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칠죄종(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 중에서도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교만이 얼마나 중하고, 또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Pr.에서 생활나누기 시간에 교만과 겸손에 관해 토론했는데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교만한 사람이란 ①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성경 말씀에도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라는 구절이 있다.(1베드로 5,5 잠언 3,34) ② 잘난척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함에도 자기만 옳다고 우긴다. 모임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남보다 먼저 떡하니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③늘 위를 보는 사람이다. 자기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는 상종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몸이 뻣뻣한 사람이다. ④남을 깎아내리고 판단하기 좋아한다. ⑤감사가 없다.
겸손한 사람이란 ①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은 사람이다. 늘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②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지 않으며 판단하고 비난하기보다 감싸준다. ③말수가 적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차림새가 수수하다. ④조용하고 나대지 않으며 신중하다. ⑤자신을 깊이 성찰해서 내 자신을 아는 것.
우리가 이렇게 의견을 모아가다가 한 단원이 “겸손을 너무 강조하면 독립운동은 누가 하며, 민주화운동은 누가 합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다른 단원이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얘기를 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따왔다는 구절이지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라는 말에 모두 흠칫했다. 이 말은 겸손을 가장하여 분연히 맞서야 할 상황임에도 침묵이나 양비론 뒤에 숨는 비겁함을 질책한 말이라 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침묵하고 어느 때에 분연히 맞서야 할지야 애매하다 했더니 한 단원이 “성모님께 여쭤봅시다.” 해서 모두 깔깔 웃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겸손의 여왕이신 성모님께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해 보고 행동한다면 만점짜리 레지오 단원이 될 거야” 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