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저출산의 시대
혼인과 관련된 풍속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결혼하지 않은 청년 남녀들이 생각보다 무척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혼인은 하지만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비혼과 저출산이 이 시대의 풍경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지만 이러한 추세를 바꾸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비혼과 저출산의 흐름이 강화되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요소들이 가장 많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모든 문제는 돈에 있습니다. 경제력을 갖추지 못해 결혼하기 어렵고, 자녀 양육에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큽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시인이 1988년에 발표한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 나오는 풍경이 21세기의 청춘들에게 조금 뒤틀린 맥락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냉정하게 진단하면, 경제적 능력을 갖춘 청춘들이 아무래도 조금 더 쉽게 결혼하는 추세입니다. 확실한 직장과 집을 가진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 더 긍정적이라는 설문조사들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연애와 사랑도 물적 비용이 듭니다. 감정과 정서만으로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오늘의 청춘들은 살고 있습니다.
물론 비혼의 요인 안에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 작동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문화적 요소들도 강하게 작용합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형제자매 없이 외동으로 살아왔습니다.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서인지, 타자와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무관심합니다. 또한 사유와 성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정서와 욕망을 강조하는 풍조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리의 감정과 욕망은 늘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향한 의지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혼인의 가치에 대한 교리적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감이 먼저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절입니다.
혼인은 성소이며 성사
교회는 여러 문헌을 통해 혼인의 신앙적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택’과 ‘가나 혼인 강좌’ 같은 실천적 프로그램을 통해 혼인과 혼인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혼인의 가치와 부요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기”(‘사랑의 기쁨’, 205항)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목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혼인이 갖는 신앙적·신학적 의미를 세 가지 차원에서 강조합니다. ‘사랑의 기쁨’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혼인을 통한 “온전한 결합은 인간 존재의 사회적 차원을 고양하고 완성시키며, 성에 가장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한 자녀들의 선을 증진시키고 그들의 성숙과 교육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205항). 다시 말해, 혼인은 두 독립적 존재의 결합을 통한 인간관계의 완성이라는 것, 결혼을 통해 성은 본능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서 거룩한 속성을 갖는다는 것, 결혼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결정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교회는 분명하게 천명해 왔습니다.
혼인 준비 교육
혼인은 하느님의 부르심(성소)에 대한 응답이며 거룩한 일(성사)이기 때문에, 혼인을 위해서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도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208항).
혼인 준비는 “혼인성사의 ‘입문’과 같은 것입니다”(207항). 혼인 준비를 위한 적절한 교육이 요청됩니다. 하지만 혼인에 대한 교리서 전체를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혼인의 의미에 대한 교리적 지식을 주입하기보다는 혼인의 신앙적 의미를 “내적으로 느끼고 음미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207항).
혼인 준비 교육은 혼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고백성사와 상담이라는 교회의 소중한 자원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과정과 방식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감수성에 맞추어 그들이 내적 성숙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는”(211항)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는 혼인 당사자들에게 교리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실질적 방법과 현실적 조언과 검증된 구체적 대책과 심리적 조언을 제공할”(211항)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혼인 준비 교육의 하나는 아마도 혼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가정에서 보고 듣고 배워온 부모의 혼인 생활일 것입니다. 신앙인 부모는 자신의 혼인 생활을 통해 자녀들에게 미리 혼인 준비 교육을 시킵니다. 사실, 혼인 준비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사목이 혼인 준비 교육의 한 여정이기도 합니다(208항).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대중 신심의 사목적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교황님께서는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을 사목적 창의력을 통해 혼인 준비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제안합니다(208항). 비록 세속의 문화는 축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정직한 직시, 공통점의 발견
혼인 준비 교육은 단순히 혼인의 좋은 점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혼인 관계에서 발견될 수 있는 위험 신호를 미리 알아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210항). 서로를 정직하게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것들을 숨기거나 가볍게 생각하고 상대방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직시하지 못하면 나중에 문제들이 드러납니다(209항).
상호 간의 감정적이고 욕망의 끌림만으로 혼인 생활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혼인할 당사자들이 “혼인에서 기대하는 것,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 함께 이루고자 하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209항). 단순히 감정과 욕망에 기초한 결합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진정한 공통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혼인의 결합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와 진정한 동기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교회는] 결코 그들의 혼인 결심을 촉구해서는 안 됩니다”(209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