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
(1877년)
최하경 대건안드레아 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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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배경
1587년 폴란드 왕으로 선출된 지그문트 3세 바사는 교황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에 힘입어 강력한 가톨릭 국가를 세웠고, 1609년에는 러시아 군대를 패배시키고 모스크바까지 입성하는 등 20240422150103_2120153319.jpg지그문트 3세에 의해 폴란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1632년 그가 사망한 이후 투르크에 이어 스웨덴과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력은 서서히 쇠퇴하여 1769년 오스트리아가 폴란드의 남부 지역을 강제로 병합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물리적 대응도 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1772년 8월 5일 폴란드 1차 분할 조약을 체결하고 바로 각각 폴란드를 점령하였다. 이에 폴란드 영토의 20% 정도가 분리되어 세 나라의 국토로 편입되었다. 1793년 폴란드 2차 분할 조약으로 영토의 60%가 사라졌으며, 1795년 10월에는 3차 분할 조약으로 폴란드는 영토의 5%만 남은 채 유럽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폴란드 국민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했다. 그리고 폴란드의 북부를 장악한 프로이센이 1870년부터 시행한 반가톨릭 정책과 독일화 정책으로 희망이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그때 폴란드 북부의 작고 가난한 마을 기에트슈바우트에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2) 성모님의 발현
1877년 6월 27일 유스티나 샤프린스카(13세)는 첫영성체 시험을 보고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나오다가 단풍나무 위에서 밝은 빛을 보았는데 그때 종탑에서 종이 울리면서 삼종기도 소리가 들려왔고 빛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 여인은 흰옷을 입었으며 긴 머리카락을 어깨 아래까지 떨구었고 천사들에 둘러싸여 진주로 장식된 황금 왕좌에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유스티나는 본당 신부님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으며 주변 친구에게도 말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친한 친구인 바르바라(12세)와 단풍나무 앞에 가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다시 날개 달린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여인이 나타났다. 그 후로 성모님의 발현은 9월 16일까지 거의 날마다 계속되었으며 하루에도 여러 번 나타나시어 82일 동안 약 160번 이상 발현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스티나는 본당 신부님이 지시한 대로 여인을 다시 만나자 질문을 하였다. “여인이시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나요?” 이에 여인은 “내가 바라는 것, 그것은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면 내가 매일 저녁 이곳에 올 것이다”라고 폴란드어로 답하셨다. 이에 유스티나와 바르바라는 그날부터 매일 저녁마다 묵주기도를 올렸으며 다른 사람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저녁 유스티나는 여인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나타나실 것입니까”라고 묻자 여인은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인 성모 마리아이다”라고 당신의 신분을 밝히셨으며 “나는 두 달 동안 여기에 올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며 병자들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모님은 당신의 성상과 경당을 만들라고 하시며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다. 그 후 단풍나무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본당 신부님은 질서를 유지하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아이들만 단풍나무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순례자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성당 광장의 지정된 곳에서 묵주기도를 하도록 조정하였다. 
성모님은 누군가가 거짓 맹세를 한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으며 그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은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열심히 기도한다면 교회는 박해받지 않을 것이며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다음 폴란드 교회는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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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은 마지막으로 샘을 축복하시며 병자들은 치유를 위하여 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이 샘물은 성사 때마다 사용되었고, 병자들이 샘물을 마시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모세가 바위를 지팡이로 치자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성상과 이 물을 마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겨진 대리석을 샘에 설치하였다. 9월 16일 14명의 사제와 1만5000여 명의 신자가 야외 경당에서 새로운 성모상을 봉헌하는 예식에 참석하였다. 그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먼저 당신의 성상을 직접 축복하셨고, 이어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시며 끝으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하시고 사라지셨다.

3) 성모님의 발현 이후
20240422150248_1563585081.jpg성모님 발현의 영향이 폴란드 전체로 퍼져 나가 어떤 마을에서는 주민 전원이 성당에서 하루에 세 번씩 묵주기도를 암송했으며, 많은 죄인이 개종하는 일이 줄을 이었다. 또한 성모님이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때에 교회는 박해받지 않게 될 것이고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을 수 있으며 폴란드 교회는 해방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폴란드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생활의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외세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도 심어 주었다. 폴란드가 성모님의 발현 이후 바로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통적으로 이어진 가톨릭에 대한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기에트슈바우트 성지는 서서히 유명해졌으며 폴란드 전역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크레멘츠 주교에 의해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시현자와 성직자, 순례자들을 조사한 후 성모님의 발현이 거짓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가톨릭을 반대하는 프로이센의 탄압으로 성모님의 발현은 주교의 공인도 받지 못하고, 발현 성지가 널리 알려지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90년이 지난 1967년에서야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님께 왕관을 봉헌하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기에트슈바우트 성당을 대성당으로 승격하였으며, 1977년 9월 11일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이하여 유제프 자스가 주교는 성모님의 발현이 신앙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고 초자연적인 기적이라며 성모님의 발현을 공인하였다. 
한편 시현자인 두 소녀는 성모님께 자신들의 미래를 물어보았을 때 수녀원에 들어갈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두 소녀는 수녀 기초과정을 마친 다음 파리에 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 수련과정을 거쳐 1889년에 드디어 수녀가 되었다. 성모님의 말씀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유스티나는 프랑스에서 평생 봉사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바르바라는 선교활동을 위하여 과테말라로 가서 고아원과 병원에서 봉사하다가 85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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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이 지시하신 당신의 성상은 독일 뮌헨에서 제작되어 성모님이 발현하신 위치에 세워진 경당에 모셔졌다. 자연스럽게 야외 경당이 만들어졌으며 기에트슈바우트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주로 이곳에 머물며 미사 참례를 하고 성모님이 우리에게 거듭 요청하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성지 주변에는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의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41년이 지난 1918년에 폴란드는 결국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야외 경당에 모셔진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님 성상(좌)
   기에트슈바우트 마을 전경. 가운데 있는 고딕 성당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대성당(우)
- 야외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순례객
- 성모님이 발현하신 단풍나무가 있던 자리에 놓여있는 기념석(좌) 기적의 샘물(우)
-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 참석한 성모화 대관식(1967년)
- 십자가의 길(좌) 묵주기도의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