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느님의 지금
“여러분은 어떤 파트에서
노래하고 계신가요?”
조경자 마리 가르멜 수녀 노틀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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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멈추어 들어보니 새들이 아주 난리가 났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그 신비를 새들은 저렇게 찬미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절로 미소 지어진다. 새싹들과 꽃들의 찬미를 제 입에 담아 저렇게 노래하노라 생각하니 내 입술도 멈추지 않게 된다. 땅과 꽃과 새들과 나무, 다른 생명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은 하나의 합창이 되고, 내 파트가 무엇인지를 계속 기억하게 된다. 가만히 멈추어 눈 감고, 저들이 먼저 시작한 노래에 내가 시작해야 할 파트를 시작할 때, 온 산 전체에, 온 세상 전체에 울리는 공명을 느끼고, 본래 하느님의 바람을 기억하며, 내 자신의 혼을 깨우는 음을 찾아 내가 노래를 시작하고 있다. 
전교생이 60명 남짓한 시골 국민학교(초등학교) 출신인 나는 언제나 합창부에 초대되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오빠 생각’을 시작으로 알토 파트를 했었다. 이후 지금까지 알토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멜로디에 알토 음이 내 안에 흐르곤 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알토 없이 불러야 더 좋은 노래가 있다. 혹은 아직 내 파트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내 파트를 하지 않고, 다만 멜로디가 공명이 되도록 입을 동그랗게 만들곤 한다. 비록 내 입에서 소리가 나가지 않더라도 공간을 채우는 울림이 되도록 내 입을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울리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식해서가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내 파트가 되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자신의 파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가만히 멈추어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모두가 제 파트를 부여받으며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풀 한 포기,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자기 파트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의 모습을 한 모두가 제 모습으로 합창하는 것이다. 그러니 순간순간이 제 역할을 할 때이다. 땅이 녹아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면, 땅은 온 사랑을 다해 씨앗을 품어 그들이 새싹으로 노래하게 한다. 일종의 교향악이자 제대로 된 합창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연결되어 이 생태계가 하나의 합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똑똑하고 가장 잘났다고 알고 있는 우리 인류는 지금 제 편에서 모든 생명들의 노래를 바꾸고 있다. 몇몇 사람들의 노래방식과 주목받는 어떤 파트만 노래하게 하는 합창이 되어 버려서 더 이상 본래의 합창곡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른 생명들이 우리들의 노래에 때로는 코러스를 넣어주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저 생명들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이 사랑스런 존재가 사라지면 우리는 결국 공명 없는 시끄러운 독창만 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고, 우리 자신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음색으로 떠드는 그 노래는 우리 존재도 무시하게 될 것이다.

생태영성은 자신의 음색을 찾아 자신의 파트에 제대로 노래하는 것
20240417115126_1399417060.jpg1962년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을 써서 그때까지 ‘신이 내린 살충제’라는 찬사를 받던 DDT가 생태계에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살충제, 농약이 보급되면서 해충만이 아니라 곤충도 죽고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따라 새들도 죽게 되어 끝내는 봄이 와도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글을 써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은 농약 회사의 반박으로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었었지만,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녀의 책을 읽고, 오히려 ‘환경문제를 다루는 자문 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전쟁 이후 머리와 몸에 있는 이를 죽인다고, DDT를 몸에 직접 뿌리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농약이 위험한 줄은 알지만, 농약 없이 농사짓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침묵의 봄이 서서히 오고 있다. 마지막 남은 새들이 최선을 다해서 자신들의 파트를 노래하고 있어 보인다. 아직까지는 새들이 노래하고 있지만, 우리가 우리의 파트에서 그들을 위하여 소리 없이 공명할 수 있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침묵의 봄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이 봄, 우리 숲에서 가장 으뜸인 솔리스트가 있다. 바로 매다. 매가 알을 부화시켜서 새끼를 봤나 보다. 어설픈 아기 매의 노래가 들리곤 하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아기 매가 노래할 때에는 다른 모든 새들이 숨죽여 듣는지 숲이 고요하다.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노래하는 것이다. 
생태영성은 자신의 음색을 찾아서, 자신의 파트에 제대로 노래하는 것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244항에서 교황님께서는 “노래하며 걸어갑시다!”라고 말씀하신다. 무조건 노래하면 독창이 된다. 교황님께서 제안하시는 것은 함께 노래하면서 걸어가는 합창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노래하려면 먼저, 내 음색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저 생명들에 걸맞은 내 고유한 음색을 이미 하느님께서 주셨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바로 이 말일 것이다. 세례받은 우리 자신의 교회 안에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파트에서 노래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