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늘어놓거나 나눈다는 뜻으로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가벼운 인사나 근황을 묻는 말인 소소한 대화(Small Talk)는 요즘 들어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좋은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기획된 수다’라고도 할 정도로 친밀감을 높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대형 은행 콜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동료들 간의 소소한 대화가 스트레스를 해결해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결과도 있으니, 가벼운 대화라도 그 힘을 무시하기 어렵다. 하물며 진심이 담긴 대화의 영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예수회 신부이자 로욜라 대학교수(2009년 사망)였던 존 포웰(John Powell)에 의하면 대화는 다섯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각각의 단계는 친밀함을 추구하는 데 모두 필요하며 대화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관계는 깊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상투적 표현의 대화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안녕하세요?”나 “잘 지내시지요?” 등의 특별한 의미 없이 하는 말들이다. 물론 말이 아닌 악수나 가벼운 포옹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대화는 가볍게 보이나 관계의 기초 역할을 하기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긍정적인 느낌으로 주고받아야 이후 더 깊은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이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네요”라는 등의 객관적 사실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 전달을 하는 수준이다. 다만 이런 대화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비록 그것이 성경 지식과 신학적 내용이라 할지라도― 의미 있는 나눔을 하지 못했다는 허탈함과 외로움으로 자리를 뜰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대화의 양은 많을 수 있지만 자기 노출이 어려워 깊이 있는 만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도 이렇다 할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했다면 이 수준의 대화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단계는 생각을 나누는 대화들이다. 이 단계에서는 주로 “내 생각에는”, “내 판단으로는”, “내가 아는 바로는” 등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노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을 나누고자 하는 이 단계부터가 참 나눔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반박이나 비판, 비웃음을 당할 가능성도 있어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가벼운 대화라도 그 힘을 무시하기 어려워
네 번째 대화의 단계는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말하는 단계이다. “오늘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두려워” 등 부정적 감정과 함께 “당신이 함께 해주니 정말 좋아요”, “이 계획은 느낌이 좋아요” 등 긍정적 감정도 표현하는 대화이다. 감정에 옳고 그름은 없지만 장황한 설명으로 지루한 느낌을 주거나 분노나 지나친 눈물 등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건전한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진정한 친밀감이 자랄 수 있다.
마지막은 영적인 대화의 단계로 우리가 대화를 통해 이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이야기해 주는 인정, 잘못한 것에 대한 꾸짖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받고 용서하는 대화들이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라면 그 관계는 친밀함에서 오는 기쁨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진실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지만 그것은 서로를 치유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고통이다. 결국 우리는 이 단계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본당에서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B자매 부부는 육아와 직장 생활을 핑계로 오랜 시간 냉담을 했다. 그런데 자녀가 독립한 뒤 남편의 정년퇴직 즈음에 부부 갈등이 심해져, 부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둘의 관계를 진단하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부부가 승진과 육아를 위해 치열하게 사는 동안 부정적 감정을 억눌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그것을 서로 받아들이면서 관계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지금 돌아보면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동거인에 불과했습니다. 맞벌이라는 핑계로 서로 일상에 필요한 대화만을 나누었는데 그게 저에겐 지독한 외로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견디기 위해 저는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살아왔고, 남편 또한 힘든 시간을 보냈더라고요.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에게 마음 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는데, 상담사의 제안으로 함께 기도하면서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뿐만 아니라 서로의 묵상도 나누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에야 비로소 제 남편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짝이라는 생각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돌보는 사람보다 먼저 동료 단원을 사랑해야
우리 쁘레시디움의 대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활동이나 활동대상자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아니면 생각을 넘어 활동 중 일어난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까지 말할 수 있는가? 나아가 동료 단원들에 대한 장점뿐만 아니라 개선점까지 이야기하며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결국 우리 Pr.의 대화 단계 수준이 단원들 간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그러니 만약 동료 단원들과 속내를 편히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나부터 대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본에 ‘수도 공동체에서 규율 다음으로 축복과 번영을 보장하는 가장 소중한 요소는 형제적 사랑과 일치’(298쪽)라고 하니 단원들 간의 친밀함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두 분(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가정 공동체 안에서 두 분의 친교를 굳건히 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터놓고 은밀한 생각까지도 서로 나누는 사이로 발전해 갔다’(교본 316쪽)라는 표현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팀워크가 잘 발휘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즉 내가 실수를 해도 동료들이 비난하지 않고 해결에 힘을 모아줄 거라는 믿음이다. 레지오 조직 또한 마찬가지이다. ‘레지오 단원으로서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에 앞서 우선 동료 단원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교본 495쪽)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훈에서 보듯 ‘동료 단원들 안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금 뵙고 섬기시듯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접촉이 이루어지면, 그 사랑으로부터 거룩한 힘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가, 세상에 만연하는 악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게 될 것이다.’ (교본 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