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1
치유
박상운 토마스 신부 전주교구

2020년 1월. 성당을 지으라는 주교님의 명을 받고 새 본당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온 세상이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2021년 3월 11일 전주교구 초남이에서 첫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선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남이 복자들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며, 성당을 짓게 되면 ‘치유를 위한 성당’을 지어야겠다고 묵상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고통받는 때에, 우리에게 오신 첫 순교자들은 그런 서원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2023년 순교자 성월 첫 토요일인 9월 2일 ‘첫 순교자 기념 권상연 성당’ 성전 봉헌식을 하였다. 이 성전을 통해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치유되기를 바라며 성모님과 순교 복자들께 전구해 주시라고 청하였다. 
루르드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성전 정면에는 묵주기도의 ‘빛의 신비’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200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루르드를 방문하시며, 기존 세 개의 신비가 성당 내부에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기에, 새롭게 ‘빛의 신비’를 요청하신 것이다. 이 모자이크는 마르코 이반 루프닉 신부님이 작업해 2007년 12월 8일에 공개되었다. 12월 8일은 1791년 이 땅의 첫 순교자들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두 복자께서 순교하신 날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바로 우리나라에 하늘 문이 열린 날이다. 
그런데, 루르드 성당 정면의 ‘빛의 신비’ 제3단인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은 두 개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그리고 있다. 오른쪽의 그림은 카파르나움의 중풍 병자를 치유해 주시는 장면이며(마르 2,3-13 참조), 왼쪽의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십자가의 상처를 보이시며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다.(요한 20,20-23 참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와 못에 찔린 당신의 손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그런데, 저 그림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빛의 신비 3단에 그려져 있을까? 그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상처를 없애지 않으시고, 그 상처를 안고 부활하셨을까?’ 붙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가 칼로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지만, 손을 대어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상처쯤은 얼마든지 지워 없애실 수 있으셨을 텐데?(루카 22,50-51 참조)

어머니는 자녀들인 우리를 품에 안으시는 분
예수님께서는 모든 작은 이와 고통받는 이를 자신과 동일시하셨다. 우리의 상처를 함께 아파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분의 상처를 만질 때, 토마스 사도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상처는 인간이시며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상처 입은 인간과 부활하신 하느님. 그분의 옆구리와 손에 열린 상처를 통해 우리는 부활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자신 안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인정하면, 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상처를 안은 자는, 상처 입은 이를 발견하고 그를 도울 수 있다. 중풍 병자를 일으키며 외적인 치유(육적 치유)를 보여주신 것이라면, 믿지 못한 우리에게 당신의 상처를 드러내시며 내적인 치유(영적 치유)를 해주신다.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1993년을 시작으로 매년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정하셨다. 교황님께서는 첫 번째 세계 병자의 날 담화를 통해 말씀하셨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고통과 고독으로 이루어진 십자가들 곁으로 다가가서 그들을 위로해 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전 교회와 더불어 영적 친교 안에서 그 고통을 생명의 주님께 바칩니다.”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시며, 죽은 아들을 품에 안으신 어머니의 고통(피에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인 우리를 품에 안으시는 분이시다. 당신의 심장에 일곱 개의 칼이 꽂히는 성모칠고처럼,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의 길에서도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품어 안으신다. 당신의 아드님과 함께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 아파하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하시기에, 성모님께서는 루르드의 성녀 벨라뎃다에게 요청하셨다. “가서 마신 다음 씻어라.” 물을 마시는 내적인 치유와 몸을 씻는 외적인 치유. 예수님 시대의 들것은 오늘날 휠체어의 형태로 바뀌었지만 그를 낫게 하겠다는 네 사람은 여전히 그곳의 수많은 봉사자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구원의 길을 함께 간다.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고통 받은 이들을 주님께로 데려올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4년 세계 병자의 날 담화를 통해 말씀해 주고 계신다. “병든 이들, 취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병자의 치유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고 우리가 친밀감과 형제적 관계의 장인이 되게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