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시작이
신앙의 시작
이지현 엘리사벳 대전교구 반석동성당 은총의 모후 Pr.

저는 어머니의 권유로 ‘소년 레지오’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200단씩 바치는 친구 때문에 제 기도가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여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재미없는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려야 했던 지루한 시간에 대한 기억. 그 정도가 레지오에 대해 어렴풋이 남아있는 추억입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 핑계로 자연스레 그만두었고, 그 이후 저는 ‘쉬는 교우’로 필요할 때 미사만 드리는 그저 그런 신자로 30년을 살아왔습니다.
성실한 신자였던 아버지가 병환으로 성당과 집만 겨우 오가는 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시고, 코로나 한복판이었던 시기의 장례식이었는데도 레지오를 비롯한 많은 신자 분이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아버지 손에 나무 묵주를 쥐여주시며 따뜻하게 천국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그립고 미사 드리시는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집 앞 성당을 다시 다니게 되었고, 30년간 떠돌아다니던 제 교적을 옮기며 조금씩 신앙에 대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예뻐 보이고 싶어 교적을 옮긴 날 저에게 스스로 선물이라며 성물방에서 미사보를 고르고 있는데 레지오를 권유하시는 얼굴이 고운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드리는 미사였고, 교적을 옮긴 첫날이었고, 초등학교 때 레지오를 하긴 했었는데…. 라며 주저리주저리 두서없이 여러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자매님은 우리 성당 은총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장님이셨는데, 저는 자신이 있게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레지오의 시작은 전혀 어렵거나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단장님이 잘 이끌어주셨고 단원 일곱 분 모두가 막내인 저를 예뻐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일부러 가르치기보다 당신들이 모범을 보이셔서 저절로 따를 수 있었고, 신앙심이 깊어졌으며, 기도와 말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장님의 권유로 예비신자 교리반 봉사도 시작하였습니다. 예비신자와 다를 바 없는 저는 신부님의 교리 수업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세례를 받아서 교리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었는데 신부님 수업을 들으며 필기하고, 성경을 찾아 읽으며 기도의 양을 늘리니, 제가 저를 바라볼 때 신앙생활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했으며 기뻤습니다. 
스물세 분의 소중한 예비신자 분들과의 인연이 생겼고, 가족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봉사하러 갔다가 오히려 보살핌과 사랑만 가득 받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세례식을 하며 6개월간의 교리 수업이 끝났는데, 시원함보다는 허전하고 그립고 고마운 마음만 가득 남았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며 보낸 지난 6개월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봉사의 기쁨을 알게 해주시고 더 나은 봉사로 제 몸이 쓰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단장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김치 없는 저희 집에 김장 김치를 가득 주시고, 매일 초 봉헌과 기도를 함께 해주시고, 궁금하고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시며, 아픈 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은총의 모후’ 단원 언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의 시작도 중간도 어설펐던 저는 지금 서기를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비신자들이 새영세자가 되었기에 조심스레 레지오를 권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봉사가 있다면 기꺼이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심에 이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온전히 레지오의 힘입니다. 저는 오늘도 초에 불을 켜고 가톨릭 성가를 들으며 우리 레지오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