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스콧 허드의 ‘믿음이 흔들릴 때’라는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 제목 그대로가 내가 그때 가진 믿음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해성사 때도 믿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기도하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 “교회에 많이 머물러라” 책에서도 신부님과 비슷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유튜브로 안방에서 쉽고도 편한 미사참례가 습관이 되었다. 텅 빈 유럽의 성당을 보며 우리 교회의 미래를 염려했던 젊은 날의 신앙을 되찾고 싶다. 젊은 날을 되돌아보니 레지오 활동했을 때가 가장 열성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쁘레시디움 단장, 선교분과 사목위원, 교리교사, 주 1회 성체조배, 가끔 복사와 성가대 활동까지…. 바쁜 직장생활과 지병인 간경화로 투병까지 함께했으니 지금으로선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지방캠퍼스로 인사 발령을 받고도 교적을 옳기지 않고 바짓가랑이만 성당에 다니는 신앙생활을 했다. 그렇게 30년 된 편한 신앙생활 습관이 쉽게 고쳐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은퇴 후 늘 가슴 한쪽에서 꿈틀거렸던 외침이다. 레지오 활동을 통해서 억지로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자!
레지오 단원 선서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던 매일 기도 생활을 한다. 읽는 책도 종교 서적으로 바뀌고 관심사도 신앙이 우선이다. 개인 성화를 위해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책상에는 믿음에 관한 책들과 성지순례 관련 자료뿐이다. 보여주기 같지만 의지의 표현이다.
갑작스러운 나의 변화에 아내의 걱정이 크다. 갑자기 변하면 ○○○는데... 큰 걱정을 하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성지순례의 현실적인 이점을 찾아봤다. 순전히 내 개인적 생각이며, 억지 논리일 수 있지만 걷기운동, 치매 예방, 여행하기, 개인 성화의 네 가지이다.
1주일에 한 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성지순례는 하루에 5000~만 보 이상을 걷는다. T MAP으로 검색해 최적의 길로 성지를 찾는 노력은 70대 중반 늙은이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철 환승도 여간 만만치 않다. 박해를 피해 이루어진 교우촌은 대체로 찾기 힘든 산골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찾기 어려운 성지를 가기 위해서는 잔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이렇게 머리를 쥐어짜 성지순례를 가는데 치매가 올 수는 없겠다. 성지순례를 통해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 구경할 수 있다면 행복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된 성지순례가 지금은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교자 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는 전국 ‘성지(聖地)’를 성지(聖趾), 순교사적지(殉敎史蹟地), 순례지(巡禮地)로 구분하고 167곳을 성지로 승인하였다. 그중 가까운 성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81곳의 성지를 순례했다. 올해는 전국 성지순례를 완주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계획 중이다. ‘우하하 성지순례단’과 같은 단체 순례, 승용차를 이용한 가족 성지순례와 제주 열흘 살기를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성지순례 스탬프를 찍다 보면 순교자들의 신앙 유산을 조금이라도 받아 정신적 토양이 바뀌지 않을까! 신앙 선조들과의 영적 교류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담아 성지를 다녀와서는 페이스북에 ‘오늘의 성지순례’ 글과 사진을 싣는다. 오늘의 성지순례를 보고 “좋아요”를 보내주는 이는 20~30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성지소개와 전교의 의미가 있다.
가끔 올바른 성지순례를 위한 마음가짐과 자세, 사전 준비 등이 궁금했다. 성지에서 미사 참례는커녕 기도와 묵상도 충분히 못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기식 성지순례, 의미 없는 순례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에 답을 주셨다. 관악산 기슭의 삼성산 성지를 알리는 표지석 뒷면에 “성지는 교우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발전한다.” 어쩌다 표지석 뒷면까지 읽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레지오 입단을 계기로 매일 기도하고 성지 순례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분명하다. 냉담 중인 아들, 딸이 성지순례에 관심을 갖고 몇 군데 동행도 했다. 2024년 성탄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미사 참례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