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주님, 오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가 봉헌되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감사인사에서 교황님께 이렇게 말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미 103위 순교 성인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복식을 통하여 124위의 복자들을 더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징이기도 한 이곳 광화문은 조선시대 주요 관청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또한 순교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순교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성장했고 우리 사회의 참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누리는 근대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오늘 시복식은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다시 한번 가톨릭 교우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뿐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 믿습니다.” 
박해시기 많은 순교자들은 광화문 주변의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고 형조로 이송되어 대역 죄인의 낙인이 찍혀 처형되었다. 광화문에서의 시복식은 죄인이 아님에도 공권력에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들의 명예적인 복권과 동시에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풍비박산된 후손들에게 작은 위로를 주기 위함이었다. 
천주교가 한국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주었던 것은 사회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 사회를 지탱하던 신분제의 탈피, 만인과 남녀의 평등은 그동안 조선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혁명적인 사고였다. 순교자들 중 여성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첫 신도회장을 강완숙 골롬바가 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고,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실제적으로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가 되기 위한 걸림돌은 많지만 경제적 독립이 우선되어야 자신의 인생을 혼자 설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의존적이라면 경제적, 심리적으로 홀로서기는 어려워진다.
내가 본당에서 사목할 때 가계가 기울어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자매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마흔 넘은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직업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서, 대형마트에서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는 시간제 일을 처음으로 얻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는 경제적 어려움도, 삶의 큰 걱정도 없이 살아왔던 터였다. 
막상 일터에 뛰어들었지만 모든 게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 주된 업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물건을 설명하는 일이라 내향적인 그에게 쉽지 않았다. 자연히 실수도 잦았고 제품을 하나도 팔지 못하고 종일 시계만 바라보다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기도하는데 문득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네가 생활이 어려워져 일하고 있지만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재물을 잃었지만 아직 건강하고 일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네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순간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임을 다시 깨달았다. 출근길에 신발 끈을 바싹 조여 맸다. 
우선 자신이 파는 제품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추천 제품과 효능에 대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완벽하게 익혔다. 거울 앞에서 인사하는 자세를 연습하고, 1인 2역으로 손님과 판매원 역할을 연습하고 또 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손님들이 질문하면 자신 있게 막힘없이 대답하고 건강에 좋은 자연식품과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연히 손님들은 그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하는 단골도 생겼다. 실적도 따라서 좋아졌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질투와 빈정거림이 들렸다. “적당히 하지. 자기 사업체라도 되는 것처럼 저렇게까지 극성이람. 그래 봐야 얼마나 더 돈을 더 벌겠다고 저러나.” 동료들의 빈정거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분을 숨기고 매장을 돌아보던 회사 최고 간부가 그녀를 눈여겨봤다. 며칠을 보아도 한결같이 열심히 일했고, 꾀를 피우지도 않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그길로 그녀는 본사에 일자리가 생겼다. 판매 직원들을 따로 교육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전국의 매장을 돌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간부로 승진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하다 보니 더 큰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만들어 독립해서 경영하고 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는 빛과 그림자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장점이 인생에서 최고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세상사 많은 부분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있다. 인생에서 어두운 그림자만 보려고 하면 자신의 삶도 그런 방향으로 가기 마련이다. 
특히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더욱 그렇다. 사람의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삶을 결정하게 된다. 불행을 맞으면 대부분은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외부 환경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외부 환경을 대하는 태도, 즉 생각을 바꿔야 한다. 행여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공격해 스스로를 병들게 할 뿐이다. 
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누구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주님, 오늘을 주셔서 저를 더 사랑하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도록 도와주소서.”라고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