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뭐라꼬예?
믿음과 효성, 정성의 여인 룻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 대구대교구

룻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다
남편을 잃고 하녀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어버린, 시어머니까지 봉양해야 했던 룻은 이삭이라도 주워 끼니를 이어갈 생각으로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들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남의 밭을 돌며 이삭을 줍던 룻은 (남편 쪽의 친족으로서 재산가였던 엘리멜렉 가문의)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지요. 마침 룻은 수확꾼들을 감독하는 종에게 허락을 구하여 보릿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보아즈는 룻에게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하는 한편, 종들에게는 그녀를 건드리지 말고 도와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보아즈는 이방인인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까닭을 묻는 룻에게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주님께서 네가 행한 바를 갚아 주실 것이다.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고 왔으니, 그분께서 너에게 충만히 보상해 주시기를 빈다.”(룻기 2,11-12)
보아즈는 룻이 한 일을 전해 듣고 그를 가상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이방인인 룻에게 친절을 베푼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공경심이 지극했을 뿐 아니라 기꺼이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자 한 그녀의 마음을 어여삐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보아즈는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기보다 하느님께서 룻의 착한 행실을 보시고 보상해 주실 것을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계속된 보아즈의 돌봄으로 룻은 충분한 이삭을 주울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아즈는 룻으로 하여금 자신의 밭에서 수확이 끝날 때까지 이삭을 줍게 하였습니다. 결국 보아즈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룻에게 베풀어진 것입니다.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 이는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이 빵과 물을 가지고 길에서 너희를 맞이하지 않았고, 너희를 저주하려고 빌라암을 고용하여 아람 나하라임의 프토르에서 데려왔기 때문이다.”(신명 23,4) 신명기 23장의 말씀처럼 룻은 율법에 따라서는 원래 이스라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하지만 룻은 하느님을 섬겼고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여 장차 메시아의 가계에 들 정도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는 이방인을 받아들인다거나, 혼인을 통해 이민족과 결합을 이루는 등의 보편적인 구원 사상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유배 이후 시기입니다. 물론 룻기의 저작시기가 유배 이후가 될 수도 있지만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로 시작하는 기록을 고려한다면 이방인에게까지 열린 구원사상의 경향이 유배 이전부터 룻기에서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구약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는 구원의 보편주의는 신약의 교회에 이르러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지요.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 때 그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미소한 이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랑의 손길을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베푸는 선행을 당신께서 베푸시는 자비로 들어 높여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룻을 어여삐 본 구원자 보아즈
집으로 돌아온 룻으로부터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보아즈에게 복을 빌어주면서 그가 그들의 일가로서 ‘구원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히브리말로 ‘고엘’(Goel)에 해당하는 ‘구원자’는 한 가정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그 가정의 가족들을 보호할 의무와 권리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이를테면 불행한 일에 직면한 가정과 가문의 재산이 다른 가문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 누가 살해되었을 경우 복수를 대신하는 조치 등을 취하는 역할, 결혼한 사람이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그 아내까지 맡는 일 등이었습니다.(레위 25,25-26,47-49; 민수 36,9; 신명 25,5-10 참조)
룻은 보리와 밀 수확 때까지 보아즈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었습니다. 수확한 보리를 타작할 때가 되자 나오미는 룻에게 “네가 행복해지도록 보금자리를 찾아 주겠다.”라고 하면서 당부하길, 몸을 잘 치장해서 보아즈의 잠자리를 알아 두었다가, 그가 자리에 누우면 그 발치를 들치고 누워 그의 처신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룻은 잠이 들었던 보아즈가 한밤중에 자기의 존재를 알고 누구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인 룻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룻기 3,9) 이에 대해 보아즈는 아버지처럼 룻을 보호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딸아, 너는 주님께 복을 받을 것이다. 네가 가난뱅이든 부자든 젊은이들을 쫓아가지 않았으니, 네 효성을 전보다 더 훌륭하게 드러낸 것이다. 자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말하는 대로 다 해주마. 온 마을 사람들이 네가 훌륭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룻기 3,10-11)
여기서 ‘효성’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헤세드’(hesed)는 ‘자애로움’ ‘자비’ ‘신실함’ ‘충성됨’과 같은 뜻을 지니는데, 보아즈는 남편을 잃었지만 젊은 남자를 찾지 아니하고 시집에 극진한 효성을 기울였던 룻에게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라 하면서, 자신이 룻의 보호자가 되고자 하지만 걸림돌이 하나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구원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에게는 나보다 더 가까운 구원자가 있다. … 그러나 그가 만일 너에게 그 의무를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내가 너를 구원하마.”(룻기 3,12)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르면 룻의 경우에는 고인이 된 남편의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고인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고인의 토지를 다른 가문에 넘기지 않게 사들이고 그 아내와 혼인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보아즈는 율법에 따라 다른 친척에게 룻을 맡을 권리가 우선적으로 있다고 하면서, 그가 포기하면 자신이 룻을 맡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보아즈는 자신이 말하던 구원자와 마을 원로 열 사람을 성문 앞에 모이게 했습니다. 당시 성문 앞 광장은 오늘날 관청의 역할을 했었지요. 이 회의에서 그들은 보아즈에게 룻을 맡을 권리를 넘겨주었습니다.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한자리에 들었습니다. 룻은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가 보아즈와 결혼해서 낳은 (‘주님의 종’이라는 뜻의) ‘오벳’을 두 팔에 안고 행복해합니다. 오벳은 훗날 베들레헴에서 미래의 임금 ‘다윗’을 낳게 될 ‘이사이’의 아버지가 됩니다. 룻에게서 다윗 왕조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고, 다윗 가문에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방인 여인에게서 다윗 왕조가 유래되었고, 다윗 왕조에서 메시아가 태어났습니다. 이방인이지만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였고 시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해 효성과 정성이 지극했던 여인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또 다른 믿음의 여인이 그 구원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0-33) 구원의 역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방인인 나 자신도 그 역사를 이어감에 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믿음과 효성과 정성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