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전례공간’
하느님 백성의 모임 공간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질병이란 조화의 길에서 벗어나 달려간 종착역입니다. 조화의 길로 돌아오는 길이 치유의 시작이고, 조화의 길을 걷고 있는 생명체의 현재 모습이 바로 건강입니다.”라고 의사인 엄동화 씨는 ‘진리 치유의 길’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건강은 ‘조화’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습니다. 그렇다면 ‘교회(敎會)’라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과 ‘성당(聖堂)’이라는 하느님 백성이 모이는 공간도 마찬가지로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공동체의 표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당’이 그리스도교의 예배인 전례를 거행하는 장소라는 관점에서는 전례 거행을 위해 마련된 여러 공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건강한 예배를 하느님께 드릴 수 있으며, 하느님의 현존이 더 잘 느껴져서 그분의 ‘거룩함’으로 참여한 교우들 또한 거룩해지지요.

‘하느님 백성’의 개념
성당 건축은 예배를 위한 공간들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구체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실천과 개념이 변하면 건물에도 필연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기에 예배를 실행하는 ‘하느님 백성’의 개념이 분명해야 그에 따른 공간 구성과 배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 헌장 9항에서 ‘하느님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에서 부르신 백성은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났으며(1베드 1,23 참조), 혈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요한 3,5-6 참조), 마침내 … 하느님 백성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하느님 백성은 혈육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집’인가 ‘하느님 백성의 집’인가?
이 하느님 백성은 본질과 역할에 있어서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으로 나뉘어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합니다(교회 헌장, 10항 참조). 이러한 ‘하느님 백성’의 개념에 따라 성당은 적어도 세례를 통해 참여하는 보편 사제직과 성품을 통하여 수행하는 직무 사제직이 각각의 직무 수행을 하는 공간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하느님 백성’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현존이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이는 전례 헌장 7항에서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라는 분명한 선언이 확증합니다. 
하느님은 집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교회는 하느님을 위한 건물을 따로 두어서 거기에서 함께 모여 하느님의 현존 속에 ‘하느님 백성’이 됩니다. 곧 하느님 백성이 전례를 거행할 때 하느님이 현존하시기에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면서 동시에 ‘하느님 백성의 집’이 됩니다.

‘환대성’과 ‘정화’의 공간인 성당 현관 또는 홀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이는 공동체입니다(로마미사경본 총지침, 27항 참조). 그렇기에 교회 건물의 ‘환대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교회로 초대하고 그들을 환영해야 하며, 그들이 자신의 가정에서와 같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환대의 본질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나고, 서로를 알고,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공간이 성당 현관 또는 홀입니다. 또한 이 공간은 성당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곳이기에 ‘성수대’와 ‘고해소’가 배치됩니다. 물론, 성당 안에 이것들이 배치된 곳도 많습니다.

모이고 이동하고 찬미를 드리는 공간인 회중석
교우들이 들어와서 제대와 감실에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성당은 하느님 백성의 집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미사 중에 교우들은 봉헌과 영성체를 위해서 행렬을 지어 이동하며, 성가들과 화답송, 복음 전 환호송 등으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런 회중석에 세례대, 성가대석이 함께 있습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당 내부는 이동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서대 주위에 모여 서 있거나 제단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14세기경부터 회중이 전례를 거행하는 동안 서 있거나 걸어 다니던 빈 공간에 점점 의자들이 많아졌고, 시간이 흘러 장의자로 채워지면서 ‘이동하는 회중’으로부터 ‘앉아 있는 회중’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지요. 1577년 밀라노 대주교인 카를로 보로메오가 남성과 여성의 분리된 좌석을 제안함으로써 ‘구분 없는 회중’으로부터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 회중’으로 바뀌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 교회는 ‘구분 없는 회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장의자로 인해 ‘앉아 있는 회중’으로 고정되어 다양한 공간 구성에 어려움은 존재합니다.

사제들이 전례를 집전하는 공간인 제단
제단은 일명 ‘사제들의 공간’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에는 말씀을 선포하고 강론을 하는 ‘독서대’가 있으며, 거룩한 성찬의 희생제사를 봉헌하는 ‘제대’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례 전체를 주례하는 사제의 좌석과 전례 봉사를 하는 복사들의 좌석, 공동 집전하는 사제들의 좌석이 있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몸인 성체를 보관하는 감실이 있습니다. 
이곳을 예전에는 ‘지성소’라고 하여 보다 특별히 거룩한 장소임을 드러내기 위해, 난간을 만들어 회중석과 구분하였고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했습니다. 지금은 교계적 질서가 계급적 구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각각의 지체들의 직무와 역할에서 기인한 질서임을 밝히면서, 점차적으로 평신도에게도 전례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서 난간이 사라지고 높았던 제대가 낮아졌습니다.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는 유명한 저서 ‘성과 속’에서 하늘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우주의 축(axix mundi)’ 혹은 ‘우주의 기둥(universalis columna)’은 장소성과 공간성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고 거룩하게 하는 상징이라 말합니다.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며, 하느님의 백성이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공간이며, 모세의 떨기나무 자리와 같은 ‘우주의 축’이며 ‘거룩한 장소’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