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프랑스 퐁맹(1871년)
최하경 대건안드레아 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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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배경
1866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보오 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나자 프로이센과 프랑스는 유럽 대륙 최고의 자리를 놓고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870년 7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먼저 선전포고를 하며 군대를 직접 이끌고 프로이센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며 스당 전투에서 포로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이센은 그 다음 해 1월에 프랑스 영토의 3분의 2를 점령하였으며 퐁맹 인근에 있는 대도시 르망에서도 대승을 거두고 퐁맹에서 40km 떨어진 라발시까지 진격하였다. 라발과 퐁맹의 시민들을 공포에 떨었으며 거리는 피난민으로 가득 찼다. 
1월 17일 나발의 주교는 성모님께 의탁하는 장엄한 내용의 서약문을 작성하여 저녁 6시경 가톨릭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약문을 낭독하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시간 퐁맹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라발시로 진격하려던 프로이센의 지휘관 슈미트 장군은 지휘부로부터 공격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2) 성모님의 발현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마을 퐁맹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저녁 6시경 12세의 외젠과 10세의 조제프는 아버지를 도와 헛간에서 말에게 먹일 건초를 다듬고 있었다. 그때 이웃 자네트가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외젠은 날씨를 확인하기 위하여 밖을 보다가 건너편 집의 지붕 6m 위 공중에 떠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놀란 외젠은 옆의 사람들을 불러 지붕 위를 보라고 했는데 동생 조제프는 황금색 별이 새겨진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고 한 반면 아버지와 자네트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했다. 어머니가 헛간에 왔다가 형제의 이야기를 듣고 지붕 위를 보았지만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도 아이들이 계속 여인이 보인다고 하자 어머니는 학교 교사인 비탈린 수녀님을 불러 왔지만 수녀님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학교로 되돌아갔다. 수녀님은 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3명의 어린이를 헛간으로 데려와 지붕 위를 보게 하였는데 11세의 프랑수아즈와 9세의 잔마리 2명이 황금 별이 새겨진 파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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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식을 접한 퐁맹 성당의 게랭 신부가 확인차 현장에 왔고 미리 와있던 마리에두아르 수녀님과 몰려온 마을 사람들은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때 라발 근처를 다녀온 주민이 “프로이센군이 라발까지 들어왔어요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라고 외치자 신부님의 지시로 ‘마니피캇’과 ‘순결하신 어머니’를 부르며 더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여인의 모습에 변화가 생겼다. (2단계) 여인을 감싸는 파란색 타원형 프레임이 생겨났고 프레임 안쪽에는 4개의 양초가 나타났다. 여인의 발아래에 높이 1m 정도의 현수막과 같은 흰색 판이 나타났으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금색의 글자가 대문자로 한 글자씩 쓰이기 시작했다. 4명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글자를 따라 읽었다. ‘MAIS PRIEZ MES ENFANTS,’(오,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DIEU VOUS EXAUCERA EN PEU DE TEMPS,’(하느님께서 곧 너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MON FILS SE LAISSE TOUCHER.’(나의 아들이 움직일 것이다) 아이들이 읽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멈출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미루어 지붕 위에 있는 여인이 성모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3단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의 어머니’를 부르자 성모님의 모습이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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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은 양손을 펴서 어깨 위까지 올렸고 성가의 리듬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4단계) 사람들이 ‘주님 용서하소서’를 부르자 성모님은 가슴에 나타난 붉은 십자가를 양손으로 붙잡고 계셨고, 성모님의 발아래에 1개의 별이 나타나 움직이면서 초에 닿자 촛불이 켜졌다. 성모님은 슬픈 표정으로 수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붉은 십자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5단계) 수녀님이 ‘바다의 별이신 성모’를 부르자 성모님의 양쪽 어깨에 희망을 나타내는 흰색 십자가가 나타났다. 그리고 성모님의 발아래부터 커다란 흰색 천이 올라오기 시작하였으며 프레임과 4개의 초가 사라졌고, 성모님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보여 주셨다. 밤 9시경에 아이들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며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프로이센은 라발시로의 진격을 중단하고 철수하였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고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3) 성모님의 발현 이후
성모님의 발현 소식은 주변 지역으로 순식간에 알려졌으며 만 3일도 안 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성모님 발현 11일 후인 1871년 1월 28일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퐁맹의 성모님은 퐁맹뿐만 아니라 인근의 라발시, 더 나아가 프랑스 전체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희망을 들어주셨기에 ‘희망의 성모님(Our Lady of Hope)’으로 불리게 되었다. 얼마 후 헛간은 성지가 되었으며, 1871년 3월부터 라발의 조세프 위카르 주교에 의해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발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1872년 2월 2일 주교는 특별 교령을 발표하며 퐁맹에서의 성모님 발현을 공인하였다. 1873년부터 성모님 발현 기념 성당의 건립이 시작되어 1900년에 봉헌되었으며, 1905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시현자 4명 중 2명은 사제가, 1명은 수녀가 되어 성모님 발현의 시현자답게 하느님과 교회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프랑스는 보불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였다. 프랑스 전 국민이 드린 묵주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없었다면 아마도 프랑스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몰렸을 것이다. 그나마 성모님이 발현하신 날을 기점으로 전투가 중단되고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프랑스로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퐁맹에서의 발현 이후에 벌어진 기적적인 상황을 보면서 프랑스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다시 프랑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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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들은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라 프랑스가 배상금을 모두 갚기 전까지 프로이센군이 프랑스에 주둔한다는 내용을 알게 되면서 한데 뭉쳐 배상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금, 은, 구리 등 닥치는 대로 물건이란 물건을 모두 모아 배상금 갚는 데 사용했다. 그리하여 불과 1년 8개월 만에 전쟁배상금 50억 프랑(당시 미국 화폐로 환산 시 10억 달러로 추정)을 모두 갚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으며 영국과 스페인의 견제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철수시켰다. 퐁맹에서 발현이 일어난 후 프랑스 국민은 달라졌다. 보불 전쟁에서 참패하고 국토의 일부까지 빼앗긴 몰락한 프랑스는 이제 다가오는 평화와 번영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대성당 정면에 있는 퐁맹의 성모님 성상(좌) 성모님 발현을 기념하여 세워진 희망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우)
- 성모님이 발현하셨을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발현 2 단계)(좌)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4명의 시현자(우)
- 성모님 발현의 5단계
-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장소인 헛간(좌) 성모님이 발현한 지붕 위에 성모 발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