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는 1998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20년간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교육에 참여하였다. 2021년 이후 수녀원 도서관에서 소임하면서, 가톨릭평화방송 힐링 프로젝트 ‘기도를 부탁해’ 기도 사도직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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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4월 7-13일)
자비는 우리의 사명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보통 우리는 기도 체험을 통해 혹은 성경 안에서 만난 하느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부활 제2주일에 교회는 하느님 자비를 기억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2000년 4월 부활 제2주일, 새천년기 첫 성인으로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리는 폴란드 출신의 마리아 파우스티나(1905-1938) 수녀를 시성하였습니다. 이 시대가 ‘하느님 자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하느님 자비의 증거자 입니다. 성녀는 일기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죄와 벌을 완전히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행해야 하고, 자비를 피하거나 변명해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갖춰야 할 본질적 요소 중 하나가 자비입니다. 탈출기에서도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34,6)라는 말씀이 있고, 루카 복음에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화의 바탕은 바로 측은지심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일어나는 가엾은 마음, 애끓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연민 어린 자비로운 행동,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기도가 절실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자연재해로 죽어가는 생명은 하느님의 자비를 요청합니다.
파우스티나 성녀는 큰일을 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전파한 것이 아닙니다. 주방, 정원사, 문지기 등 수녀원 내에서 일상의 아주 사소한 일을 충실하게 살면서 내적으로는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어 자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담아 자비를 행하는 우리의 작은 일상 안에 구원이 있음을 기억하는 한 주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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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4월 14-20일)
부활의 첫 증인 성모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들을 통해 주님을 더 깊이 친밀히 만나고, 깊이 사랑하며, 가까이 따르도록 이끌어 주는 영신수련에 의한 30일 피정이 있습니다. 이 피정의 마지막 주간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관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누구를 만나러 가셨을 것이라 상상하십니까? 복음에 기록된 대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향료와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레나일까요?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영신수련에서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성모님을 관상하도록 초대합니다. 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첫 번째로 찾아간 분이 어머님이라는 것입니다.
영신수련이 초대하는 대로 주님 부활을 관상하면서 저는 ‘이 얼마나 지당하고 옳은 일인가’라는 잔잔한 감동과 놀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만남을 관상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마리아의 아들을 여읜 상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넘어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 테오토코스)로서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께만 신뢰를 둔 의연한 기쁨으로 가득한 성모님의 모습을 관상하는 기쁨은 저를 부활의 따뜻한 빛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성모님 조각이나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기쁨은 아마도 부활하여 당신 곁으로 다시 오신 아드님을 만난 그 하늘스런 환희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혹 얽히고설킨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안에서 망연자실 두 손 놓고 있을 때 느닷없이 주님의 방문을 받아 마음이 평화로워지거나 일이 순순히 풀리는 것을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인간적인 생각을 넘어 하느님께 의탁해 깊은 침묵 속에서 성체 앞에 머물 때, 혹은 묵주기도를 하며 깊이 기도에 침잠할 때 알아듣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방문이 아닐까요. 하느님의 뜻에 당신 자신의 의지를 합하여 피앗(Fiat)으로 응답하신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 저희를 부활하신 주님께로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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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4월 21-27일)
저를 이 자리로 부르셨군요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우리 각자가 부름을 받은 지금 여기를 보도록 초대받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네가 나의 일을 해 다오” 하시며 우리를 이 자리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군단 레지오 마리애는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 그리고 공생활 전체를 아우르는 묵주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성화해 나갑니다.
성모님의 최고의 덕목인 겸손과 순명의 정신으로 기도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소리 없이 교회에 활력을 줍니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1서 12장에서 언급한 대로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공동선을 위해 우리의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가 하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찬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즘 CPBC 힐링 프로젝트 ‘기도를 부탁해’를 통해 삶의 최전선에서 사는 신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매듭진 것을 풀어가면서 자신과 가정을 성장시켜 나가는 신자들은 저에게 큰 감화를 줍니다. 때론 나만 속 터지게 사는 것 같아 억울하고, 때론 그냥 당해서 분하고, 때론 왜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하는지 불만이고, 때론 경계를 세우지 못해 다른 이로부터 상처받아 쓰라린 가슴을 끌어안은 분들의 사연이 안타까워 성체 앞에 몇 날 며칠을 앉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 그 부르심의 자리는 나를 충만하게 성장시키는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라고 하신 말씀의 히브리어 레크레카(לֶךְ־לֶךְ)는 존재의 심연 곧 ‘너 자신에게로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 존재가 부서진 고통의 자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하느님께 나아가 존재 깊은 곳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이곳 레지오 마리애는 삶의 여정에서 성모님의 덕목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라고 주신 하느님 사랑의 고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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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4월 28일-5월 4일)
잿더미에서 일어난 기적
2021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갑작스런 화재로 잿더미가 된 광산 지역 최초의 공소인 원주교구 상동공소 재건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처음 화재 당시에는 모두 망연자실했지만, 공소 신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도움을 통해 ‘지붕 없는 성전 기도의 벽’으로 부활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화재로 인해 지붕이 사라진 성당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이 아닌 뻥 뚫린 하늘이 보이고, 성전 옆은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절벽 같은 산이 황망하게 드러나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난감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10명 남짓한 신자들과 태백지구 신부님들은 어둠을 딛고 매주 목요일마다 임시 공소에서 ‘화재 수습 및 복원 기원 미사’를 봉헌했다고 합니다. 2년 7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절망은 희망이 되고, 재난은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탄생을 맞이해 이제는 하늘이 성전 지붕이 되고 산이 성전 벽이 되는 자연 그대로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단장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지붕 없는 성전 기도의 벽’ 상동공소는 삶의 여정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듯했습니다. 화마가 덮치는 중에도 유일하게 타지 않고 남아 있던 것은 기념품으로 전달받은 십자가였습니다. 기념품 십자가 아래에는 ‘Miracle From Ashes(잿더미에서 일어난 기적)’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무가치하거나 파괴된 것이 놀라운 것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서지고 찢겨 재생할 희망을 찾을 수 없어 낙담하고 있던 잿더미에서 생각지도 않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니 희망하지 못할 상황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기적이 따른다는 깨달음도 주었습니다. 2023년 8월에 거행된 지붕 없는 성전 기도의 벽 상동공소 봉헌 미사 초대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화재 후, 상동공소는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이들의 희망의 장소, ‘참나’를 발견하는 소명의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