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계절의 변화도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피우고 새잎을 돋우는 그 일을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대자연에 그저 고개 숙이게 된다. 봄이 오는 소식을 가지고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겨우내 들락날락하며 고개를 내밀었던 싹이 곳곳에 올라오고 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공동체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들을 잘 분리한 후, 모아서 자원이 되도록 하는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자원순환 마당을 잘 관리하여 허투루 버려지는 쓰레기가 없도록 하고 있으며, 이제는 분원 공동체 모든 수녀님들도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나아가 이웃집 솔아네서도 버려질 쓰레기를 가져와 자원화하고 있고, 방문하시는 분들도 페트병과 폐건전지 등을 가져와 자원순환 마당에 기부하고 가신다.
분리된 쓰레기들을 모아 수집하는 자원센터에 가져다드리곤 하는데, 그중에 몇몇 가지 품목은 자원순환 마당을 운영하는 데서 겪는 약간의 어려움들을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수녀님이 그동안 모아둔 폐건전지와 우유팩을 가지고 면사무소에 다녀오셨는데 너무 행복한 함박웃음으로 뭔가를 한 아름 안고 오셨다. “수녀님들, 이것 좀 보세요! 폐건전지를 새것으로 바꿔왔어요. 조금만 더 수고하면 이렇게 지구도 건강해지고 우리도 풍요로워지네요!” 정말 놀라웠다. 폐건전지 10개를 새 건전지 1개로, 우유팩 10매를 종량제봉투 1매로 바꿔주고, 공병은 라벨 부착한 채로 마트에 가져가면 100원에서 500원까지 보증금을 환급해 준다. 작은 실천이 모여 큰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단지 물물교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버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귀한 ‘창조계 돌보기’이다.
물론 지자체마다 규모가 다를 수 있지만 지자체별로 노력하고 있어 시민들이 면사무소나 동사무소를 통하여 ‘자원을 순환하는 장’에 대하여 요청하고, 혹은 각 지역사회에 이러한 플랫폼이 필요함을 요청해야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큰일을 향한 작은 실천들을 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동사무소는 친절한 서비스로 물건을 바꿔주는가 하면, 어떤 동사무소는 “그냥 거기 통에 넣고 가세요!”라고 한다. ‘왜 우리 동사무소에서는 이렇게밖에 하지 않는가?’라고 하기보다 실행하고 싶은 원의가 먼저 모여야 한다.
사회 문제는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해 해결해야
한 수녀님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본당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면서 신자들이 생태환경을 보전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수녀님이 만나는 주일학교 아이들, 특별히 복사단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페트병을 성당에 가져오도록 했다.
아이들이 복사단 회합에 페트병을 가지고 오면, 회합 전에 먼저 페트병의 라벨을 떼고, 납작하게 눌러 근처에 비치된 ‘쓰샘 자판기-재활용 페트용 자판기’에 페트병을 넣고 있다. 이렇게 자원이 순환되는 것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게 되니,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페트병을 들고 온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쓰레기가 되는 것을 성당으로 가져오면 자원이 되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녀님은 아이들과 함께 전 세계의 ‘기후정의 행진’ 및 ‘가톨릭 기후행동’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있을 때 아이들에게 행사의 취지와 목적에 대하여 안내한 후 ‘피켓 만들기’를 함께해 세상과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레지오 훈화에서도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항을 골라서 읽어드리며, 현시대에 교회의 방향을 기억시키고, 진정 우리가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를 나누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인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매우 복잡한 상황의 해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적 선행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19항).”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