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나이트클럽으로 재단장한 유럽 성당과 교회들… 왜?’라는 기사 제목을 지난해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구 감소에 따라 성당이나 교회 건물들이 클럽과 호텔 등 다른 용도로 변경되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벨기에의 성심수녀원 건물이 카페와 콘서트장이 되고, 또 그 근처의 프란치스코회 건물은 고급 호텔로 재단장했다는 이야기지요. 한국도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도 최하 수준이고, 신자증가율도 저조하며, 기존 신자의 냉담 율도 상승하여 유럽이나 미국 성당이 겪었던 성당이 비어가는 현상이 조만간 한국에도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당’은 그냥 건물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 나름대로 거룩함을 지닌 공간인지, 아니면 성당이 봉헌식을 통해 하느님께 축성 받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공간일 때만 거룩한 공간인지를 묻게 됩니다. ‘성전’의 개념을 재정립하신 예수님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에서 헬레니즘의 문화적 영향을 받고, 유다이즘에 따른 종교적 영향 속에 있었던 신약 시대에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에게 거룩한 공간은 어떤 개념이었고, 어디서 모임을 이어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다인들의 예배 공간인 성전(templum)과 회당(synagoga)
성경에는 성전과 회당이라는 종교적 건물에 대한 두 개념이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간의 광야 생활이나 가나안 정복한 후에도 판관 시대에는 계약 궤를 모신 ‘성막’이 정치, 종교, 사회적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건설한 후에 그의 아들인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계약 궤를 모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로데가 지은 성전을 중심으로 보면, 당시 사회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뜰들이 있습니다. 황금 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서면 ‘이방인의 뜰’을 만나고 이곳은 이방인들도 들어오고 장사도 할 수 있어, 예수님께서 이곳을 장사와 환전하는 곳으로 더럽혔다고 분노하신 곳이기도 합니다(요한 2,13-22 참조). 그 다음으로 유다인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여인의 뜰’을 만납니다. 다시 이곳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좁고 긴 ‘이스라엘의 뜰’이 나타나고, 아름다운 청동문을 지나면 ‘사제의 뜰’이 나타납니다. 이곳에는 희생 제물을 도살하는 곳, 제물을 위한 제단, 정결 예식을 위한 청동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전의 본 건물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고, 휘장이 이 두 공간을 구분했습니다. 성전의 지성소로 향하면서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통해 확인된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 사회의 계급적 질서는 이방인, 여인, 유다인 남성, 사제, 대사제입니다.
유다인 회당은 유다교 집회의 중심지이고 신앙 공동체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인 ‘시나고게’(synagoge),에서 유래한 ‘시고나가’는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회당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침략으로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일부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1세기에는 회당이 예루살렘에만 480여 개나 있었으며 팔레스타인 지역 밖에 흩어져 있던 유다인 거주지인 디아스포라에도 1,000여 개가 있었습니다. 성전이 희생 제물을 바치는 예배 공간이라면, 회당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예배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낸 예수님 자체가 살아있는 성전!
예수님은 열두 살 되던 해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루카 2,41-50).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성전을 자주 방문하셨으며, 그곳에서 기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셨다고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모든 복음서가 공유하고 있습니다(마태 21,12-13; 마르 11,15-19; 루카 19,45-48; 요한 2,14-16).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은 의회 앞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분이 당한 고발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마르 14,58 참조).
신약의 참신성은 인간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참된 공간이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입니다(요한 2,21).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현존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개념을 또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결합한 공동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2코린 6,16 참조).
그리스도인들만의 예배 공간이 된 가정집(domus ecclesiae)
초세기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성전에 가기도 했지만, 전례 회중의 기도 모임을 위해 마련된 ‘교회의 집’(domus ecclesiae), 곧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라고 합니다. 여기서 ‘빵을 떼어 나누었다’는 것은 지금의 성찬례를 의미합니다.
‘교회의 집’으로 사용되었던 로마 주택의 형태가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에 있었던 시리아의 두라에우로포스(Dura-Europos)에서 1930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어떤 상류 로마인의 전형적인 주택을 개조했으며, 집회실, 작은 세례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주택이 ‘교회의 집’으로 활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세례실에 그려진 ‘착한 목자’,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와 베드로’, ‘중풍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등의 프레스코 벽화들 때문입니다. 박해 시대를 겪었던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신자 공동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적 열정을 느끼게 하는 고고학적 발견입니다.
외적인 건물로서의 교회(성당)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위한 건물로써, 지역 교회가 공간 속에 드러나는 이콘이며, 생생하고 선택된 돌로 건설된 영적 건물을 위한 필수적인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은 참된 교회가 외적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이 교회는 여러분을 위해 건설되었지만, 여러분 자체가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