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연동성당 인자하신 동정녀 Pr. 강영수 안젤라 단장(74)은 레지오 단원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주님의 은총, 성모님의 도우심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절감한다고 한다. 1961년 12세에 첫영성체하고, 1964년 한림본당 당시 길 요셉 주임 신부님 손에 이끌려 ‘애덕의 모후’(당시 단장 김두생 수산나) 소년 Pr. 주회합실로 갔는데 바로 입단시켜 주셨다. 앳된 소녀 시절부터 레지오 단원으로서 60여 년 여정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고 웃음 지었다.
성인이 되어 입단한 ‘하늘의 문 Pr.’에서 활동할 때는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본당 사목에 협조하며 전교 활동에서부터 병들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이시돌의원이나 요양원으로 안내하고 환우들을 돌보는 일,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 말동무와 궂은일을 나누어 해드리던 시간 등 헤아릴 수 없는 광경들이 떠오른다.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로 시작해 한림지역 사람들은 물론 축산업과 신협 설립, 복지 사업, 청년 교육 등을 통해 제주지역 발전에 큰 은혜를 베푸신 한림성당 초대 주임 임피제(Patrick James McGlinchey·성골롬반외방선교회, 2018년 선종) 신부님과의 인연 역시 커다란 은혜였다. 임피제 신부님과 보좌역이던 옥 신부님의 잔심부름도 하고, 식복사로 일하던 ‘엠마 어머니’(신부와 수녀들이나 교우 모두가 부르던 호칭)를 가끔 도우면서 임피제 신부님을 가까이 뵐 수 있었다. 교황대사라든지 외국손님, 정부 인사 등 귀한 손님들이 방문할 때는 골롬반수녀원 접견실을 주로 이용했었는데 준비하는 로사리아 수녀님을 거들기도 했다. 잊지 못할 일은 양털 니트로 유명한 한림수직 제품을 알리는 패션모델이 잠깐 되었던 일이다. 그 모습이 표지에 실린 ‘TIME’ 지가 임피제 신부님에게 보내졌고, 서울 조선호텔 매장에 내걸리기도 했다.
이후에 성이시돌센터 직원으로 일했다. 당시 이시돌중앙실습목장에서는 연수원을 짓고 전국의 청년들을 모아 축산기술 연수를 진행했다. 연수차 이시돌에 왔던 경남 문산성당 출신 구상조 바오로 형제는 한림성당을 오가면서 안젤라 자매와 인연이 닿아 1975년에 결혼하고 이시돌협회 축산과장까지 지냈다.
남편의 보증 잘못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삶의 궤적 또한 많다. 하지만 삶의 아픈 부분도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떳떳이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부부가 이시돌협회에서 퇴직한 후 남편 바오로는 양돈사업과 젖소, 비육우 등을 키우는 농장을 경영하고, 안젤라 자매는 동네 작은 목욕탕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부를 이뤘다. 장남이 고3이 되자 신제주에 있는 학교 앞 H사우나를 임대해 운영해 수입 또한 쏠쏠했다. 그런데 그동안 일군 부로는 감당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1997년 IMF가 닥쳤을 때, 연대보증을 서줬던 남편의 지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채무를 갚지 않은 채 떠나는 바람에 부부의 재산 모두가 압류되는 바람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안젤라 자매는 그해 12월 24일 성탄 성야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구유 경배를 하라는 주례 사제(이시우 안드레아 신부)의 말에 구유 경배하면서 눈물이 솟구쳤다. ‘아, 아이들 데리고 이사 갈 방 한 칸 없으니 이 구유가 내 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주님! 우리 여섯 식구 생명을 거둬가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임신부를 면담할 때 한 달 생활비로 10만 원도 없는 형편이라 교무금을 내지 못하는 사정과 함께 구유 경배 때의 기도를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주임신부는 부부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안수하면서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늘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이 부부의 가정에 거처를 마련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주셨다.
이후 거짓말처럼 한림성당 가까이 있는 한천목욕탕을 운영하게 됐다. 임대를 한사코 거부하던 소유주가 “아주머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네요. 아주머니가 믿는 분이 보입니다. 제가 믿는 부처님도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라며 키를 넘겨주겠다는 것이었다. 안젤라 자매는 속으로 ‘아, 하느님!’하고 찬미드렸다. 주임 신부님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받게마씸.” 말씀해 주셨다. 안젤라 자매는 이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현재 경영하는 H사우나를 장남 이름으로 낙찰받아 소유하게 된 사연도 드라마틱했다. 안젤라 자매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가업이었다”라고 말한다. 목욕탕, 사우나를 운영하면서 선교의 터로 활용할 수 있었음도 감사히 여긴다.
신제주에서 연동성당이 분리, 설립되면서 교적을 옮긴 후 인자하신 동정녀 Pr.에서 회계직을 맡고 있을 때 영적 지도신부 앞에 불려 가서 “단장 하십시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잠시 머뭇거리자 신부님은 “순명하십시오”하는 바람에 단장직에 오른 게 올해까지 도합 14년째이다. 서기직만 맡지 못했었고 부단장, 회계직도 수년씩 임했다. 그동안 ‘헤쳐 모여’가 세 번이나 이뤄질 적마다 단장으로 새로 임명받은 까닭이다.
안젤라 자매는 단장으로서 인자하신 동정녀 Pr. 단원들 모두가 “아꼬운(예쁘고,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견줄 수 없이 이쁘다는 뜻의 제주어) 분들”이라고 귀띔한다. 연동성당 설립 때부터 활동 중인 위령회에서는 염습을 전담하다시피 한다. 한평생을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우심을 알기에 “가장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하겠습니다” 아뢰고서 임하는 일이다.
안젤라 자매는 “이제 빚의 굴레에서도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라고 말한다. 특히 가정을 이룬 네 자녀는 각자가 남매를 두고 있다. 자녀들, 손자와 손녀들,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아하실 만큼 잘 자라주었다. 18명 대가족을 이룬 성가정으로 본당 사목 협조에도 모두 열심이다.
안젤라 자매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담담히 말한다. “가방 하나 등에 둘러메고 주변의 어려움에 처한 이들, 헐벗은 이들, 아픈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절망에 빠진 이들을 찾아다니며 힘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_ 강영수 안젤라
_ TIME지에 올랐던 사진(좌) 제주시 KAL 호텔에서 열렸던 한림수직 니트 홍보 행사
_ 한경훈 미카엘 주임신부님과 인자하신 동정녀 단원들(좌) 18명의 성가정을 이룬 강영수 구성조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