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 없는 작은 도시에 살면서 지역 병원에 다니다가 어지럼증이 심해서 인근 도시 대학병원으로 이원을 했다. 심장내과에서 어지럼증의 근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이비인후과와 협진이 필요하다 해서 양쪽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다 받았다.
검사 결과 이비인후과에서는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안 들리는 귀는 고치셔야지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난 오래전부터 왼쪽 귀가 안 들렸다. 20년도 더 전에 어느 작은 병원에서 내 귀의 신경이 죽어서 고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지금 신경이 살아있어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던 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진단서에 적힌 내 병명은 전음성 난청인데, 고막과 달팽이관을 연결하는 이소골이 녹아 끊어져 소리 전달을 못하는 것이고, 티타늄 소재 인공 뼈로 이소골을 재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과연 결과는 좋을까? 부작용이나 의료사고는 없을까? 하는 걱정들을 기우로 만들면서 수술과 회복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신세계에서 살고 있다.
수술 특성상 미각을 좀 잃게 되고, 그걸 회복하는 기간이 좀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미사 시간에 신부님 목소리가 쩌렁쩌렁 고막을 울리고, 열댓 명의 성가대 노랫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로 웅장하게 들릴 때도 있고, 풍물 교실에서 듣는 꽹과리 소리가 너무 커 휴지를 돌돌 말아 귀를 틀어막고, 가끔 귀에서 기차 화통 소리가 나고, 얕은 트림이라도 할 때는 귀에서 천둥 이 치지만, 이미 들었기에 각오하고 있고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라 참을 만하다. 심장내과 검사로 밝혀진 어지럼증의 원인은 수년간 내 혈압치수에 맞지 않은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진단받고 새로운 혈압약을 처방받으며 이후로 몇 달째 어지럼증도 잠잠해졌다.
그 과정에서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처럼, 내 귀를 고쳐주신 성모님이시라고 감사한다. 내가 안 들리는 왼쪽 귀 좀 고쳐달라고 병원을 찾아다니며 애타게 청한 것이 아닌데 알아서 고칠 수 있게 된 것은 성모님의 은총이요 섭리란 것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 또한 생각해 본다.
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낙엽 밟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름다운 음악 소리, 내 귀에 다디단 소리만 듣고 살고 싶지만,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 세상의 듣기 싫은 소식들도 수용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고, 성모님 군사인 레지오 단원은 세상의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누가 아파하는지, 누가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는지, 진정 내가 들어야 할 목소리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코로나를 겪으며 예전처럼 요양원으로, 병원으로, 또 어려운 이웃 가정방문으로 활동하기가 참 어려워진 현실이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예수님께서 아파하시는 곳, 성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고, 끊임없이 부르고 있을 텐데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가서 우리 레지오 체계를 이소골에 비유하게 된다. 세나뚜스를 고막이라고 한다면 달팽이관은 레지오 마리애 각 단원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막에서 달팽이관에 이어지는 이소골이 건강해야 바로 들을 수 있듯이 레지오 마리애 교본, 관리와 운영지침서와 더불어 다달이 하달되는 상급평의회 소식이 올바로 전달되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레지오 단원 개개인도 올바른 지식과 정신으로 무장될 것이고, 성모님 보시기에 좋은 군대의 모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