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하늘땅물벗’ 창립은
교회사적․문명사적 사건
최선호 이보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 회장

공동의 집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대기와 물 등 환경의 오염, 물 부족, 기후 위기,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파괴, 그로 인한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및 세계적 불평등에 대해서 우려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2023년 10월 4일에 사도적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통하여 다시 한번 지구적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2015년 파리와 2023년 두바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의 반응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한동안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 생태계의 안녕이 우리 사회의 보건 및 인간의 건강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깊은 내적 회개가 필요합니다. 일상 안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소소한 실천을 하는 일반 시민으로서 과연 이런 활동이 위기 극복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온다고 격려해 주십니다. 오늘날의 문화와 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져야 하며, 생태 교육은 정보 제공에만 머무르지 말고 습관의 형성에 이르러야 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가 요청됩니다.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습관을 바꾸려고 결심하며 일관성 있게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커다란 우주적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09, 211, 212, 217, 220항 참고)

2016년 10월 4일 가톨릭 생태 사도직 단체 ‘하늘땅물벗’ 창립
가톨릭교회는 1970년대 초반부터 인류가 환경 파괴의 희생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환경 파괴를 시대적 불의로 진단하였습니다(‘팔십주년’, 21항). 사회 교리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0년 1월 1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발표하신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계기로 1991년부터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활실천부를 중심으로 환경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모여서 교회 내 환경 운동의 발판으로 하늘땅물벗 모임을 만들고 활동하였으나 사도직 단체로 정착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하였습니다.
2015년 5월 24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반포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환경 운동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2015년 9월 15일 제15회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님께서는 회칙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셨습니다. 자료집의 해당 부분입니다.
“하늘․땅․물․벗 : ‘하늘․땅․물을 살리는 벗들의 모임’(하늘․땅․물․벗) 1991. 8. 시작: 신자들의 자발적인 모임 없이는 지속적인 환경운동 유지 어려움. 따라서 빈첸시오회(정의), 마리아의 푸른군대(평화), 군종후원회(평화) 등과 같은 사도직 단체로서 ‘하늘․땅․물․벗’의 본당 내 조직을 생각할 수 있음. 한 본당에 여러 개의 ‘하늘․땅․물․벗’ 조직도 가능할 것. 예를 들면 <1구역 하늘․땅․물․벗>, <2구역 하늘․땅․물․벗> … 그런 모임들이 현행 반모임, 구역모임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회합 때 공동기도, 말씀/생활 나눔도 병행할 수 있고 생태문제에 관한 나눔과 활동 가능.”
이런 생각은 2010년 11월 30일에 발행된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 환경에 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지침서’ 41항에도 나타납니다. 지침서는 본당 사목평의회의 환경분과와 같은 것이 ‘위로부터의’ 조직에 해당한다면,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는 환경 사도직 단체는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해당한다면서 1991년에 시작한 ‘하늘땅물벗’ 모임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마침내 처음 시도한 지 25년만인 2016년 10월 4일 생태 운동의 주보성인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 가톨릭 생태 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이 창립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17년 2월 1일에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인준하였고, 인천교구는 2019년 2월 1일에 생태 사도직 단체로 승인하였으며, 제주교구는 2022년부터 본당 차원에서 시작하였다가 2023년 10월 16일에 교구벗(틀낭벗)을 설립하였습니다. 2023년 8월 3일에 서울대교구, 인천교구, 제주교구는 하늘땅물벗의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교구 간의 정보 교환 및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여 ‘가톨릭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를 결성하였습니다.

하늘땅물벗은 하느님․이웃․자연 사랑의 통합적 실천 지향
유경촌 주교님께서는 2016년 하늘땅물벗 창립 미사 강론에서 하늘땅물벗의 창립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강조하셨는데, 생태 사도직 단체가 전 세계 어디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해 왔으나, 하늘땅물벗은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자연 사랑의 통합적인 실천을 지향합니다. 그러하기에 신앙생활의 목표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강론에서 주교님께서는 하늘땅물벗의 창립은 문명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땅물벗은 물질이 중심이 되는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신앙과 영성에 의한 지속 가능한 문명 창달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인간 이외의 피조물을 자원으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근대 산업문명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생태계 파괴를 조장해 왔습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시하신 통합생태론의 관점과 맥락에서 일방적인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순환적인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는 방향으로 인간-자연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고서는 공동의 집 지구에 대한 경외심과 영성을 회복하고 당면한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유경촌 주교님의 강론 말씀처럼, 우리 한국 교회가 지난날에 다양한 서구 신심 운동과 영성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듯이 하늘땅물벗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 심화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하늘땅물벗이 지향하는 새로운 대안적 삶을 통하여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 문명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인간의 힘이 다한 끝에 비로소 하느님께서 시작하신다고 합니다. 때론 어려움도 있겠지만, 오직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만을 찾아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획기적인 전환의 시대에 교회사적이고 문명사적인 이 사건에 함께하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