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프랑스 루르드(1858년)
최하경 대건안드레아 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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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배경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무염시태(無染始胎, 라틴어로 Immaculata conceptio)’라고 하는데 성모님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었음을 뜻한다. 무염시태는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내려왔다. 무염시태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무염시태가 교리로 되기를 희망하는 교회와 신자들이 많아진 상태에서 여기에 어떤 표징이 더해지고, 교황과 교황청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면서 교리로 확정될 수 있었다. 
1830년 ‘뤼뒤박’에서 발현한 성모님은 당신의 신분을 원죄 없는 잉태라고 하셨으며, 1846년 ‘라살레트’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비밀 메시지를 전달받은 교황 비오 9세는 영적인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세계의 모든 주교들의 자문을 받아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선언하여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로마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의로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무염시태 교의를 반포한 지 4년이 지난 1858년 루르드에서 발현한 성모님이 다시 당신의 신분을 원죄 없는 잉태라고 하심으로써 교황이 선포한 무염시태 교의가 사실상 진실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2) 성모님의 발현
1858년 2월 11일 프랑스 남부의 피레네산맥과 인접해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서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베르나데트의 가족은 매우 가난하여 루르드의 버려진 카쇼(감옥)를 개조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베르나데트는 땔감을 구하기 위하여 가브드포 강가로 갔다가 마사비엘 동굴에서 황금빛의 구름과 함께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하얀 드레스에 머리 위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베일을 걸치고, 하늘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오른팔에는 황금빛 줄에 흰 구슬이 엮여 있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여인을 본 베르나데트는 바로 무릎을 끊고 묵주를 꺼내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녀가 묵주기도를 마치고 여인을 따라 성호를 긋자 여인은 황금빛 구름과 함께 동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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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은 이날부터 7월 16일까지 총 18번을 발현하시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셨다. 여덟 번째 발현에서 성모님은 늘 참회하고 하느님께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다. 아홉 번째 발현에서 성모님은 바닥을 가리키며 “샘에 가서 샘물을 마시고, 씻으며 그곳에서 자란 풀을 먹어라”라고 하셨다. 베르나르트가 무릎을 끓고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자 진흙탕 물이 솟구쳤다. 그녀는 흙탕물 세 차례 내버린 후 네 번째에 두 손을 모아 물을 마셨고 얼굴을 씻었으며 그곳의 풀도 뜯어 먹었다. 그녀가 얼굴이 흙으로 뒤범벅이 된 상태로 움직이자 사람들은 베르나데트가 미쳤다고 조롱하며 큰 소동이 일어났다. 오후 늦게 사람들은 흙탕 구덩이에서 맑은 물이 쏟아져 가브 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몰려와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자 그들의 몸이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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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치유의 기적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루르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순례자들이 급증하였다. 열세 번째 발현이 후 페이라말 주임신부는 베르나데트에게 다음에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름을 물어보라고 요청하였다. 열여섯 번째 발현에서 베르나데트는 여인에게 세 번이나 이름을 물었지만 여인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 번째로 같은 질문을 하자 여인은 비로소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며 당신의 이름을 밝히셨다. 베르나데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잊지 않으려고 계속 소리 내어 반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고 이를 본 군중들도 그녀를 따라서 함께 뛰었다. 그녀는 주임신부에게 달려가 여인의 이름을 전달하였고, 신부는 그제야 그녀가 그동안 한 이야기에 거짓이 없으며, 발현한 여인이 성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여덟 번째 발현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없이 미소만 보이는 성모님을 보았는데 그녀는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회고하였다.

3) 성모님의 발현 이후
베르나데트는 평생 가난과 질병, 무교육에도 불구하고 거짓 없는 태도와 용기, 사욕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탁월한 영적 능력을 보유한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보다도 부족한 어린 소녀일 뿐이었지만 문맹이라는 결점을 믿음으로, 견디기 어려운 가난을 신앙으로 대처하였다. 1860년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려고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느베르로 보내졌고, 1866년 성 질다르 수도원에 입회하여 서원하였으며, 기도와 은둔 속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879년 35세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녀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1925년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무염시태 대축일에 시성되었다. 1862년 1월 18일에 타르브 지역의 로랑스 주교는 성모님의 발현을 공식적으로 공인하였으며, 1866년에 마사비엘 동굴 바로 위쪽에 작은 지하성당이, 1876년에 고딕 양식의 무염시태 대성당이, 1889년에 비잔틴 양식의 로사리오 대성당이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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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트는 “아마 저보다 더 가진 게 없고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면 성모님은 제가 아닌 그 사람 앞에 나타나셨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구유에서 탄생한 것과 같이 성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환경에 있던 베르나데트에게, 그리고 가장 못 사는 마을 중 하나인 산골 마을 루르드를 선택하여 발현하셨다. 루르드 성지는 지금도 몸과 마음이 아픈 신자들과 일반인이 가장 많이 찾는 성지이다. 
오랫동안 주님을 떠나 있던 냉담자들은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근심과 걱정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은 평화와 위안을 얻는다. 또한 기적을 바라고 루르드 역에 도착한 순례자는 걱정과 의구심으로 긴장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지만 순례 후 루르드를 출발하려고 대합실에 대기 중인 그들의 표정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즉각적인 치유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성모님의 위로를 받아 돌아가는 모습은 항상 감동을 준다. 이와 같이 순례자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몸의 치유뿐만 아니라 마음의 치유, 그리고 더 나아가 영적인 치유까지도 얻어 가는 것이다.

4) 기적의 샘물
20240318145723_72930609.jpg루르드 샘물은 기적의 샘물로 불리며 루르드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고취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발현 이후 난치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치유를 희망하며 물을 마시거나 몸을 씻고 있다. 이런 이유로 루르드는 해마다 5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방문하는 세계 3대 성모님 발현 성지가 되었다. 치유의 기적은 현대적인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치유가 즉시,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므로 사실상 기적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총 7천여 건의 치유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이 중에서 루르드 의료국의 조사 후 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적이 70건이나 된다. 이런 이유로 루르드는 성모님 발현 성지 중에서 세상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다양한 신앙 체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많은 순례객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성모님 발현 성지가 되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마사비엘 동굴에서 발현하신 성모님
- 마사비엘 동굴 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무염시태 대성당
- 발현을 시현한 14세의 베르나데트(좌) 성지 광장에서 보이는 대성당 전경. 한 성당처럼 보이나 실은 3개의 대성당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우)
- 느베르 성 질다르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녀 베르나데트(좌) 성 질다르 수도원에 있는 베르나데트의 성상 (중) 수도원 성당 제단 옆에 안치되어 있는 베르나데트의 유해(우)
- 침수장 전경. 성모님의 샘물에 몸을 담그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이 침수장을 이용한 사람에게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