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 청주읍성 순교성지는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복된 원시보 야고보, 배관겸 프란치스코, 김사집 프란치스코, 오반지 바오로, 장 토마스 등 다섯 분의 순교 복자와 김준기 안드레아, 전 야고보, 최용운 암브로시오 등 세 분의 하느님의 종이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터로, 순교자들의 숭고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지이다.
청주읍성 순교성지 순례길은 도보로 약 70분이 소요되며, 서운동성당(주임신부 최상훈 디모테오)에서 출발하여 청주 진영 순교지→남문 밖 장터 순교지→충청병영 순교지→북문 밖 장대 순교지→청주옥 신앙 증거터 등 순교지 4곳과 증거터 1곳을 순례하고 서운동성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례길이다.
서운동 예수성심성당(청주시 상당구 대성로 41)
서운동성당은 청주읍성 순교성지 관할 성당으로, 천주교 박해 때에 탄생한 청주 순교자들의 순교지와 신앙 증거터가 모두 이 성당의 사목 관할 구역 안에 들어 있다. 1933년 6월 상당구 중앙로 62번길 16(현 가톨릭청소년센터)에서 청주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1963년 7월 25일 지금의 성당을 완공 봉헌함과 동시에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성당 제대에는 복자 오반지 바오로의 거룩한 유해(아래턱뼈)가 봉안되어 있다.
청주 진영 순교지(청주제일교회)
조선 시대 군대가 주둔하던 충청도의 다섯 개 진영 중에서 중영이 있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체포를 주도한 관청이 진영이다. 우선 병인박해 초에는 진천 지장골(현 진천읍 지암리)에서 체포된 복자 오반지 바오로가 이곳 진영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고, 3월 27일 영장(營將)의 집무처인 읍청당 앞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1866년 11월 3일과 1867년에는 진천 새울(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출신의 하느님 종 김준기 안드레아, 청주 금봉(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월용리) 출신 하느님의 종 전 야고보가 각각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또 보은 멍에목(현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 출신 하느님의 종 최용운 암브로시오 회장, 여 요한과 최조이 부부도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한 뒤 1868년 4월 이후(음력)에 순교하였다.
청주 남문 밖 장터 순교지(남문사거리)
옛 청주읍성의 남문 밖 장터(현 육거리 종합시장의 전신)에서는 음력 2일과 7일에 장이 열렸다. 신유박해가 막바지에 이르던 1801년 12월 22일(양력 1802년 1월 25일),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가 조리돌림(회술레)을 당한 장소도 바로 여기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1866년 어느 날,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보은 멍에목에 살던 안 루카가 체포되어 청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장터로 끌려와 조리돌림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청주 병영 순교지(청주중앙공원)
조선 시대의 군대 주둔지인 충청도 병마절도사 병영이 있던 자리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천주교 순교자들의 순교지요, 신앙 증거터이다.
처음 이곳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사람은 1799년 4월 17일 장살(杖殺)로 순교한 홍주 응정리(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의 매우물) 출신의 복자 원시보 야고보였다. 이어 1800년 1월 7일에는 당진 진목(현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 출신의 복자 배관겸 프란치스코가 혹독한 매질 아래서 순교의 화관을 썼다. 1800년에는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가, 1801년에는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1802년에는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많은 천주교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거나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이에 청주교구에서는 신앙의 빛을 밝힌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2002년 9월 26일 이곳에 순교자 현양비를 안치하였다.
청주 북문 밖 장대 순교지(북문사거리 북쪽)
‘장대’는 옛 청주읍성 북문 밖에 있던 군대 지휘소로, 복자 장 토마스(1815~1866)가 순교한 곳이다. 복자 토마스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6촌 형제로, 수원 느지지(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서 태어나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며, 1839년의 기해박해 이후 진천 배티 교우촌(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청주 포교들에게 체포되어 진영으로 압송되었고, 그곳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뒤 이곳 장대로 끌려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866년 12월 29일에는 다시 이곳 장대에서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진천 정삼이골과 용진골(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에 이웃해 살던 손관보 베드로와 여 요셉이 참수형으로 순교의 영광을 얻은 것이다.
청주옥 신앙 증거터(용두사지철당간 옆)
옛 청주읍성 동문 안에 있던 청주 옥은 박해 때마다 각처에서 체포된 천주교 순교자들이 옥살이의 고초를 겪으면서 신앙을 지킨 증거터였다. 1800년의 순교 복자 배관겸 프란치스코와 인언민 마르티노가 서로를 권면하면서 천당 영복을 노래하였다.
1866년의 순교 복자 오반지 바오로, 하느님의 종 김준기 안드레아, 진천 응행정(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출신의 순교자 오사룡, 진천 틍점(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살던 윤 바오로, 진천 지장골(현 진천읍 지암리)에 살다가 체포 된 이영준 아우구스티노도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서운동성당 순교자 현양회(043-252-6985)에서는 순례자들에게 매주 2회(수, 금) 11시 성당을 출발해 성지 안내를 해드리고, 단체(8명 이상)일 경우, 순례 봉사자가 함께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순례일 경우 성당에 오시면 순례 방법을 안내해 드린다고 한다.
청주읍성 순교성지는 도심 속에 있는 성지이기에 쉽게 순례할 수 있다. 순례를 통하여 신앙선조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열정적인 삶을 배우며, 하느님께 더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