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1
온전한 봉헌
길성환 베드로 신부 전주교구 사목국장, 전주 Re. 담당사제

본당에 오랜만에 부임하여 사목 생활을 하며 좀 더 깊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안전하고도 티 없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레지오 훈화를 준비하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성모 마리아의 정신이다.”(‘레지오 교본’ 제3장)라는 대목을 접하며 ‘왜 성모님의 군단에게 꼭 성모 마리아의 정신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강력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성모 마리아의 ‘깊은 겸손’,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등의 성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그때 문득 나의 마음속에서는 단순한 봉헌이 아니라 ‘온전한 봉헌’이라는 마리아의 삶이 그려졌다. 사실 교회 안에서 봉헌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다. 그분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그분께 모든 것을 봉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믿음 말이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은 봉헌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최상의 이끄심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며 감사를 드린다. 
첫째로, 성모 마리아의 온전한 봉헌의 삶은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시작되었다. 늙은 요아킴과 안나는 가장 예쁜 나이의 귀여운 딸을 봉헌해야 했다. 교회는 바로 이날을 마리아가 주님께 봉헌된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지낸다. 이렇게 마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의 손길에 의해 봉헌되도록 맡겨졌다.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전통은 자녀들을 인간의 소유가 아닌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드림으로써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구원 계획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에는 인간인 부모에 의해서 태어나지만 그 이후에는 주님의 손길이 거두어 주신다. 
둘째로, 성모 마리아 자신의 봉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성모님의 자기 봉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어디일까? 그 대목은 단연코 ‘예수님의 탄생 예고(루카 1,26-33)’ 장면이다. 인간적으로 보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앞에 온전히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참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의 삶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전해졌을 때,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온전한 순종의 봉헌이었고, 십자가 위에서 심장이 찔릴 아들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당신 심장도 이미 꿰찔리시며 아들을 인류를 위해 내어주신 봉헌이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당신 아들을 온전히 자신과 함께 인간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셋째로, 마리아의 온전한 봉헌에서 아름다운 모습의 본질이 나온다. 화가들이 그리는 마리아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젊고 아름답고 빛나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18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의 화가 사르넬리의 작품으로 몬테까시노 분도 수도원에 소장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모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보통 그렇게 표현한다. 다만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온전히 봉헌된 모습, 아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마음에 깊이 품고 묵묵히 따르는 모습, 아드님의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고 바라보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a62626
까 우리 눈에 보이는 성모님의 모습은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 앞에 온전히 봉헌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온전한 봉헌’의 삶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에 의해 신성한 것이 돼
이처럼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마리아의 온전한 봉헌의 신심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참으로 모든 피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온전히 삶을 봉헌하는 데에 있다. 
저 자신도 사제 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상본과 함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는 말씀을 성구로 삼아 항상 봉헌의 삶을 살고자 약속했었다. 그러나 십자가 안에서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예수님을 닮고자 하지만 바치기는커녕 오히려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더 몸부림친다. 그래서인지 요즘 더욱더 마리아처럼 나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지 깊이 되돌아보며 신앙의 철이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봉헌 생활이 오로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살아가는지도 성찰한다. 
그렇다. 우리의 ‘온전한 봉헌’의 삶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에 의하여 신성한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군단이 ‘마리아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