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도와주고 마음 쓰며 기도하라
(스톡데일 패러독스)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은행 부지점장인 앤디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情夫)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쇼생크 교도소에 갇힌다. 그곳에서 그는 교도소장과 간수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의 범죄 행위들 속에서 고된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우연히 소장이 많은 유산 상속을 받는다는 것을 엿듣게 되어 그에게 유산 세금 감면 방법을 알려주면서 소장의 불법 재산 관리자가 된다. 그러면서 특권을 누리던 중, 새로 들어온 죄수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사람임을 알게 되어 소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 관리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소장은 오히려 그 증인을 죽여버린다.
그렇게 감옥을 나올 희망 없이 살던 어느 날, 앤디는 아침 점호에 나오지 않았고 그가 갇혀 있던 방에서 구덩이가 발견된다. 그는 16년 전부터 조그마한 암석 망치로 매일 조금씩 벽을 파내고 여배우 포스터로 가리면서 결국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역설’이라는 뜻의 ‘패러독스’(Paradox)에 미국의 ‘제임스 스톡데일’ 해군 장성의 이름을 따온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때 공습 임무 수행 중 격추되어 1965년부터 무려 8년간의 포로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폭행을 당하여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마비되어 평생 장애를 갖게 되고, 작은 독방에 감금되는가 하면 수많은 고문을 겪는 등 혹독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훌륭한 대우를 받는 포로’의 사례로 비디오에 찍히는 걸 피하고자 고의로 자해를 하기도 했고, 부하 포로들의 고립감을 줄이기 위해 자기들만의 소통이 가능한 내부 통신 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석방된 후 그는 포로 기간 중 살아남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를 묻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상황을 낙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들은 반복되는 상실감에 결국 삶을 포기하고 죽게 됩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교훈인데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과 아무리 가혹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입니다.” 즉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강하게 지니되,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태도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 경영전문가인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2001)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이름을 붙여 ‘성공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미래를 낙관하되 동시에 현실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태도’를 위대한 기업들의 성공 조건으로 내세웠다. 결국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없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절망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강하게 지니되 현실은 냉정하게 직시해야
어려서부터 레지오 활동에 열심인 어머니를 보며 자라 청년 레지오의 경험도 있는 K자매는 남편은 비신자이고 시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다 보니 결혼 후 오랜 기간 냉담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50대 초반에 비로소 성당에 다시 나가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입단하였다. 하지만 주회 참석을 하면서 다소 실망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 주에 한 번 이상은 환자 방문이나 교우 방문 등 활동을 하셨고, 그녀 또한 청년 단원 시절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는데 그 쁘레시디움에서는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녀는 단장에게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물어보니, 단장은 단원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세상도 많이 변해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며 오히려 어려움을 토로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정말 요즘은 예전에 하던 상가(喪家) 봉사나 환자 돌봄 등이 상조회사나 요양원의 발달로 활동 형태가 달라졌고, 그나마 쉽게 할 수 있었던 가정이나 병원 방문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워졌더라고요. 그런데 교본의 ‘활동의 예와 방법’에서 활동의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되어있어 제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노력봉사도 놓쳐서는 안 되겠지만, SNS 등 다양한 소통 방법을 이용하여 하느님을 전한다면 단원들의 고령화가 문제가 되지 않을 듯했습니다. 오히려 교리 지식과 사람 심리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주회합 교본연구 시간에는 교본에 있는 대인관계 방법들을 살펴보며 의견을 나누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제가 공부한 기초적 심리학 내용을 단원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 훈련되면 좀 더 적극적인 활동도 가능할 듯합니다.”

각 단원의 활동은 활동 보고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야
‘성모님은 레지오의 모후이시다. 성모님은 당신의 레지오의 용사들을 영광스러운 싸움터로 불러 모아 싸움을 지휘 격려하시며 몸소 진두에 서서 승리로 이끄신다’(교본 236쪽) 그러니 성모님의 군단인 우리는 ‘예언된 승리를 향해 진군하는 것’(교본 70쪽)이고, 당연히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성모님께 바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교본에서는 활동 보고에 정성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활동 보고는 ‘단원들을 훈련시키는 중요한 방법’이고, 실제로 활동 보고를 통해 다른 단원들의 활동 방법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활동에 대해 경험 있는 단원들의 의견을 듣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교본 291쪽 참고) 그러니 각 단원이 어떤 활동을 어떻게 했는가는 활동 보고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교본 171쪽 참고) 
나는 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성모님이 뜻하시는 대로 좋은 성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가? 혹은 우리는 큰 힘을 지니신 성모님의 도구로 쓰이고 있으므로 하찮은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정도는 크든 작든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뿐만 아니라 활동의 쉽고 어려움을 가늠하여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한순간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나는 승리를 낙관만 하면서 나의 불충분한 노력이나 허술한 활동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교본 62쪽 참고) 그리고 그것은 활동 보고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본에 ‘레지오 단원의 능력을 알아보려면,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서 쏟는 정성과 보고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된다’(교본 291쪽)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도와주고 마음을 쓰며 기도하라’라고 하신 바오로 성인의 권고를 기억하라.(교본 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