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젬마는 모태 신앙이었냐?” 아니면 “어릴 적에도 성당에서 살았냐?”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저 웃는다. 왜냐면 나의 신앙생활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 그것도 결혼과 출산을 하고도 한참 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1남 3녀의 셋째딸로 태어나 막내로 늘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엄격한 통제 안에서 자랐다. 한때 열심하신 불교 신자였던 우리 부모님은 (나중엔 이 스테파노, 홍 아델라로 세례받으셨지만) 내가 친구들 따라 교회나 성당을 다녀오면 그렇게 나무라며 혹시나 잘못된 연애를 하지나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여의도에서 초, 중, 고를 다녔던 나는 집 앞에 여의도성당을 두고도, 성당에 한번 가보자는 친구들의 말에도 늘 부모님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중2 겨울방학 때 아빠 엄마 몰래 (아마도 청년들 성탄제였던 것 같다) 성당에 다녀온 후 나도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가 호되게 혼만 났을 뿐이었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 결혼과 출산을 한 후, 나는 남편 직장 때문에 1995년 대전으로 오게 되었다. 대전에서 어언 29년, 내 삶의 거의 반을 지낸 셈이니 이젠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나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 듯하다. 대전에 오면서 인연이 시작된, 나의 대모님께서는 선교에 대단한 달란트를 가지신 분이신데, 내게 아무리 입교를 권유해도 너무 말을 안 들으니 안타까워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계속되는 공략에 드디어 입교와 더불어 2001년 세례를 받긴 했지만, 세례 증명서가 마치 졸업장인 양 나는 그날로 냉담 교우가 되어버렸다.
남편 사업도 도와야 했고, 아무 연고도 없던 타향에서 아이들 육아와 내가 좀 더 하고 싶던 공부들에 성당은 걸림돌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핑계일 뿐, 중학교 시절 내가 그렇게 열망했던 종교가 이젠 나에게 큰 올가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 집 우편함에는 늘 본당 주보가 꽂혀 있었고, 오며 가며 구역 자매들과 만나거나 성당을 지나칠 때면 ‘언젠가는 나도 성당에 나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곤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유학을 앞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기도가 너무나 절실했던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 보니 그동안 오며 가며 만났던 성당 자매님들이 알게 모르게 뿌려 놓은 작은 겨자씨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하느님을 멀리했던 잘못에 통회가 밀려와
2006년, 드디어 나는 5년간의 냉담을 풀며 성당에 나오게 되었는데, 기도가 간절했던 나는 성당에 가면 성모동산에 계신 성모상 앞에서 긴 시간 멍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이 수녀님께 “저 여자 (멘탈이 좀 이상해 보인다며) 면담을 해 줘야지 않겠냐” 하셨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올 이야기지만, 그 정도로 당시 나는 집을 떠나 멀리 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가 너무나 절실했었다. 비록 나의 필요와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성당 생활과 기도 생활은 하루하루가 너무 평화롭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모님께 선물 받았던 묵주기도로 드리는 9일 기도서를 보면서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들 생각하며 매일매일 성모님께 바쳤던 묵주기도는 내 일상의 첫째 자리가 되었고, 매일미사 책을 보니 미사가 주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평일에도 매일 참례했던 미사 전례 안에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그동안 하느님을 멀리했던 나의 잘못에 대한 통회가 밀려왔다. 또한 그때부터 신부님, 수녀님, 교우분들이 권유했던 모든 봉사를 한 번도 거리낌 없이 순명하며 일인 다역을 하게 되었다. 새로 이사 온 신설 구역에서 초대 구역장을 시작으로 본당 행사와 관련된 흐름을 알게 되고 헌화회, 성가대, 새벽미사 독서와 미사해설, 여러 단체 활동 등... 내게 주어졌던 봉사를 기쁘게 했다.
그 당시 신설된 구역이었기에 레지오가 없던 우리 구역에 레지오를 만들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초창기 입주한 구역 식구 4명이 모두 간부가 되어 2007년 드디어 ‘즐거움의 원천 Pr.’이 창단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역장을 맡고 있었기에 부단장으로 시작한 나의 레지오 활동이 2023년까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다. Pr. 부단장 3년, Pr. 단장 3년, Cu. 단장 3년, 그리고 평단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활동과 기도, 그리고 단원들간의 끈끈한 친목을 통해 성모님께 공경을 드리고, 성모님께서는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신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레지오에 대한 나의 기쁨은 날로 커져만 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모님의 보호 덕분에 아이들은 착하고 반듯하게 커 주었다. 성가정을 이루려는 나의 열망의 기도를 성모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어, 내가 냉담을 푼 지 1년 만인 2007년에 남편은 베네딕도, 그리고 2008년에 아들은 필립보, 딸은 비비안나로 새로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주시니, 내가 그토록 꿈꾸었던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로도 우리 가족들은 견진성사, 딸아이의 혼배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뤄나갔다.
또한 딸아이의 출산에 대한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딸 쌍둥이 손주를 한꺼번에 선물로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자칫 기복신앙으로 비칠까 우려도 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성모님께 바치는 간절한 묵주기도야말로 가장 나를 가난하고 겸손하게 하며, 모든 것은 주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4명으로 시작한 첫 주회합이 어느덧 800여 회차를 맞이하며, 이젠 11명이 도란도란 매주 즐겁게 성모님과 함께하는 우리 즐거움의 원천 Pr. 여러 봉사를 하면서 내가 더더욱 하느님 뜻 안에서 겸손하게 봉사직에 임할 수 있도록 내 신앙의 근간이 되어 주었던 레지오 마리애의 성모님 정신에 나는 너무나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한 신앙의 힘이 있었기에 나는 그 후로도 본당의 사목위원과 대전교구 평단협 임원, 그리고 꼬미씨움 단장 직책의 부르심에 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 개종하신 부모님, 하늘나라에서 막내딸의 활동 기뻐하실 것
더불어 이 글을 쓰면서, 예수님과 성모님 다음으로 떠오른 분은 나의 부모님이셨다. 한때는 본인들만 절에 다니시면서 하느님은 멀리하며 자식들은 집안에만 옭아매는 호랑이같이 무서운 분들이셨지만, 이미 신자셨던 할머니(이 마리아)가 하느님 나라에 편히 들어가실 수 있도록 뒤늦게 개종하여 두 분 모두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훗날 우리 남매들은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모두 수서성당에서 장례미사로 하느님 품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얼마 전, 나는 대전교구 어르신 축제에서 장기근속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감사장을 받았다. 2008년부터 어르신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여, 중간에 다른 직분으로 쉰 적도 있었지만 내가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우리 아빠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보시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어르신들께 더 잘해드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엄마가 이젠 외국 성지순례보다는 대전교구에 성지가 많다는데 가끔씩 데리고 가달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후 갑작스러운 급성 백혈병으로 2주 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국은 한 번도 함께 못 다녀보고 엄마와 이별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 후 노인대학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성지순례 다니는 당신 막내딸의 모습을 우리 엄마도 진심 기특하게 여기시리라 생각한다.
2024년 새해에는 그동안 내심 소망했던 교리반을 맡아 예비신자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예비자 교리교사직을 맡게 되었다. 이 또한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순명할 수 있었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족하나마 내 신앙 여정에서 만났던 나의 하느님을 그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지나고 보니, 한때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핑계로 하느님을 멀리했지만,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이제는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로마서 15,17)”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나의 남은 시간을 레지오 마리애 활동의 가장 으뜸인 하느님을 알리는 ‘선교’에 힘쓰고자 한다. 또한 제게 주신 이 모든 은총에 하느님과 성모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사진설명(위로부터)>
_ 막내딸로 태어난 어릴 적 가족사진
_ 2023년 아치에스 행사후
_ 2023년 어르신 축제 감사장 후 주교님과(좌) 2013년 성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