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 입회 전 나는 청년 레지오 활동을 했었다. 우리 쁘레시디움의 이름은 ‘상아탑’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환자 방문, 외로운 할머니 방문을 했었고, 주말이면 백석묘지를 방문하여 연도를 바치거나 사랑의 선교회 요양 시설에 가서 빨래와 목욕 봉사를 하고, 또 가끔은 나환우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노동 봉사를 하곤 하였다. 이렇게 활동을 했었기 때문인지 수도 생활 안에서 직면해야 했던 도전들이 마냥 어렵게만 다가오지 않았었다. 마치 오늘 이렇게 살도록 이끄신 준비 된 과정처럼 다가왔었던 것이다.
레지오 활동을 하며 우리는 성모님을 눈앞에 두고 따라가듯이 배우며 활동하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서의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성모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활동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예수님 곁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씀은 우리들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하였다.
성모님의 군대로서 우리는 가장 낮고, 어둡고, 도움이 필요한 그 자리에 조용한 기도로써, 그리고 따뜻한 손길과 밝은 미소로 함께하고자 했었다. 너무도 행복했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이 날로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수녀원에서 마리아의 이름을 수도명 앞에 성으로 달고 사는 지금,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신 말씀은 나의 삶 전체를 방향 짓는 말씀이 되었다. 그런데 성모님의 말씀과 삶을 내 삶 안에서 곱씹다 보니, 내 마음 안에서 여러 가지 질문이 올라왔다. 성모님은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어떠한 확신이 있으셨길래? 그리고 무엇을 보셨길래? 다만 오지랖 넓은 분이셔서 다른 사람의 결핍을 도와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이셨을까?
지금의 상황을 서로 이야기 나누고, 함께 기도해야
말씀에 고요히 머물러보니 성모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예수님께 말씀하셨다는 것이 깊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대목에 나의 모든 감각과 마음과 시선을 두고 있다. 포도주가 없는 것을 알아보신 이 어머니의 시선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지금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 곧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위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기도 없는 척, 혹은 모르는 척하며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들에게 다가와 말씀하신다. “포도주가 없구나.”
성모님의 군대로서 성모님의 눈길이 머무는 그곳을 찾아다녔던 청년이 이제는 ‘마리아’를 자기 이름으로 삼고 그 어머니의 눈길로 예수를 드러내고자 매일 매순간을 봉헌하고 있다. 그러니 수없이 많은 가난한 이들의 울음소리, 전쟁의 공포에 숨죽여 우는 이들의 소리, 이미 우리 인간들보다 더 먼저 멸종의 길에 들어선 하느님 창조의 피조물들의 울부짖음이 내 작은 심장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불안 속에서 이렇게 서로에게 묻곤 한다. “그럼, 우리가 뭐부터 해야 할까요?” “전 지구적인 이 위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드린다. “먼저, 술이 떨어진 상황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세요. 가족과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그럴 때 우리는 진심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아주 짧은 기도라도 구체적인 지향을 두고 진심으로 기도하세요. 입버릇처럼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고통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면 그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림 <카나의 혼인잔치> 지오토 디 본도네(1304-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