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기도와 활동의 사도직
(레밍효과)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댐이 무너졌다”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뛰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다리 위에 자폭 테러범이 있다”라는 큰 소리가 들린다면 다리 위에 있던 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1913년 3월 12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서 댐이 무너졌다는 말에 한두 명이 뛰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2000명에 달하는 군중이 내달렸다고 한다. 그 뒤 민병대가 댐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수차례 방송을 한 후에야 군중은 겨우 진정되었다. 다리 위 자폭 테러범 경고 또한 2005년 8월 31일 이라크 바그다드 티그리스강의 한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다리를 건널 때 들려온 외침으로, 사상자만 1200명에 달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물론 현장에는 테러범도 폭탄도 없었다.
‘레밍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레밍은 북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주로 서식하는 쥣과의 포유류인데, 이 레밍들이 집단으로 들판을 달려 절벽으로 뛰어내려 죽는 모습에 빗댄 용어이다. 즉 ‘우두머리나 자신이 속한 무리가 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행동’을 레밍효과라고 한다. 
레밍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번식력이 좋은 레밍들이 어느 정도 수가 많아지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하여 우두머리 쥐를 따라 집단으로 바다로 뛰어들어 죽는 것으로 추정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레밍들은 웬만한 강은 쉽게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오히려 새로운 개척지를 찾는 과정에서 잘못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즉 강의 폭을 잘못 판단하여 헤엄을 치다가 힘이 빠져 익사하거나, 혹은 바다를 강으로 착각하여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으로 죽는 것은 레밍들이 앞을 잘 못 보는 근시여서 우두머리만 보고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이론이 맞는다면 레밍들의 죽음은 무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우두머리의 잘못이다.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무리의 죽음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나 속한 무리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행동 ‘레밍효과’
우리도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 이는 개인은 약하지만 무리로 있으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원시 시대 경험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레밍효과’라고 불릴 만한 여러 현상을 만들어 낸다. 사교육이나 유학 열풍, 패션이나 갖가지 유행 등으로, 의식 없이 대세를 따르는 모습들이다. 또한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지지 또한 레밍효과라 할 수 있는데, 정치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은 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일말의 의심과 반대도 없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몰려간다. 
전문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여기며 자만하던 J자매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삶의 허무를 느껴 성당을 찾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대모로부터 기도하는 단체라고 소개받은 레지오에 흔쾌히 입단하였다. 그러다 교본 공부를 하면서 레지오야 말로 훌륭한 사도직 단체라는 확신이 생겼고, 이를 위한 실천적 방법이 기도와 활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활동 보고 시간에 기도만 보고하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쁘레시디움에서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하며 활동 보고와 활동 배당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단장은 가끔 하는 본당 협조만으로도 활동은 충분하다고 했고, 단원들도 하던 대로 하자며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단장이 그녀가 잘난 척한다며 뒷담화한다는 말까지 들리자, J자매는 매우 실망하여 협조단원으로 남을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선배 단원으로부터 활동 보고 시간에 기도를 보고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상급의 지시로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그 지시가 활동이 없어서 보고하지 못하는 단원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기도를 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는 일부 단원들조차도 레지오를 그저 ‘기도하는 단체’로만 여길 정도가 되었으니 좋은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활동 없는 단원을 어떻게 행동단원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인식이나 습관을 고치기는 참 많이 어렵네요.”

레지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은 “기도와 활동”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하는 데 있다. 그리고 레지오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한다.(교본 27쪽 참고) 이처럼 레지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은 “기도와 활동”이다. 그러니 기도와 활동, 이 둘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교본은 ‘활동은 형태를 달리한 기도이다. -중략- 초자연적인 기도의 영성이 밑받침되지 않은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교본 289쪽)고 말하고 있다. 
반면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교본에서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않는 레지오를 전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군대로 비유(431쪽 참고)하고 나아가 ‘기도나 그 밖의 신심 행위를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활동의 의무를 채우지 못하며, 활동의 일부로도 인정하지 않는다’(289쪽)라고 한다. 그러니 ‘한 주간에 두 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교본 289쪽)하는 활동 의무와 까떼나를 매일 바쳐야 하는 기도 의무는 성모님의 군사를 군인답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요즘 레지오가 단순히 기도하는 단체로 인식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활동이 없으면 주회합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활동 보고는 주회합이라는 건물의 벽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주회합은 레지오 생명의 원천이니(교본 291쪽 참고) 기도와 활동으로 균형을 잡지 못하는 레지오는 그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치 집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레밍들처럼 말이다. 
만약 레밍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것은 우두머리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면 무리 속에서 의식 있는 레밍들이 소리쳐 방향을 조금씩이라도 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끝은 절벽이다. 
활동이 예전과 같지 않아 어려운가? 그렇다면 다음 말을 명심할 것이다. ‘레지오는 어떤 일이든지 모두 해보려고 하고 할 만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는다.’(교본 28쪽) 레지오 본래의 이념을 수호해야 하는 평의회의 결정에 대해 우려가 생기는가? 그렇다면 다음 말로 힘을 얻어 행동할 것이다. ‘레지오 단원은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꾸리아나 또는 어느 상급 평의회와도 개인적으로 통신을 교환할 수 있다.’(교본 238쪽)

‘여러분이 이미 착수한 기도와 활동의 사도직을 더욱 성실히 수행하도록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교황 비오 1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