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네 농협매장에서 생선을 팔면서 레지오 단원을 하는 사람입니다.
5년 전 겨울, 몹시도 춥고 바람이 면도칼처럼 매섭게 불던 어느 날 새벽에 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라보 트럭에 싣고 매장으로 돌아오던 중 너무나 춥고, 매장문이 열리려면 시간도 남아 몸도 녹일 겸 들어간 곳이 지금 제가 다니는 포이동성당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새벽미사에 다니다가 저도 모르게 성체까지 받아먹고 문을 나서는데 원장수녀님께서 “형제님, 세례명이 어떻게 되세요?”하고 저를 붙잡으셨습니다.
생선을 만지던 시커먼 손으로 낼름 성체를 받아먹는 걸 눈여겨보셨나 보다. ‘아이코, 걸렸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더듬더듬 “유스티노인데요...” 했더니 수녀님께서 제 손을 잡으시고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유스티노 형제님, 제가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해드리겠습니다. 형제님도 호렙산 기도원에서 기도하세요.” 이러셨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니 뭉클하기도 하면서도 ‘여기는 개신교도 아닌데 기도원이 따로 있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띄엄띄엄 새벽미사를 다니다 궁금증이 나서 호렙산 기도원이 어딘지 물어보니 성체조배실을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암튼 내친김에 성체조배실에 들어가는데 문 입구에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세요’ 이렇게 쓰여 있어서 장화를 벗고 들어갔습니다
어둠 속에 켜있는 빨간 등 하나. 저도 모르게 그 앞으로 끌려가서 엎드렸고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그분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얘야, 그땐 왜 그랬니?” 꾸짖으시는 게 아니라 나지막하고, 너무도 부드럽지만 또렷한 목소리였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당신께서 꼬옥 껴안아 주셨습니다. 저는 그냥 그렇게 납작 엎드린 채로 눈물, 콧물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곤 바로 다음 날 고해성사를 보고 20년 넘는 냉담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막막했습니다. 그동안 기도문도 다 바뀌었고, 전례도 아득한데 그걸 일일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리바리 몸만 새벽미사를 다니고 있는데 어떤 귀하게 생긴 자매님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곤 “형제님, 저랑 같이 레지오 한번 해보지 않으실래요?” 알고 보니 이 자매가 새벽마다 저를 유심히 보다가 입단시켜야겠다고 맘먹고 기도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의 별 Pr.’의 예비단원이 되었고, 단장님과 단원들이 기도문이며, 전례며, 묵주기도도 가르쳐주시고, 교본을 읽고 선서를 거쳐 레지오 단원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급평의회에서 주관하는 기사교육도 받고, 마리아학교도 다니고, 피정을 거치면서 단장이 되었습니다. 성당 안에서도 성가대 활동도 하고, 구역 활동도 맡아보라고 구역장도 시켜주셨고, 작년에는 꾸리아 단장이 되었습니다.
늘 혼자만 은총을 독차지하는 거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그냥 성모님과 함께 하다 보니 이젠 매장도 세 곳이나 운영하고, 옷차림도 행색도 바뀌다 보니 저를 보아온 고객들이 그러십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젊어지지? 사람이 바뀐 거 같아.” 그러면 저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드립니다. “자매님, 저랑 같이 레지오 한번 해보지 않으실래요?”
저 출세한 거 맞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