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프랑스 라살레트(1846년)
최하경 대건안드레아 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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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배경
19세기는 유럽의 왕조체제가 무너지고 공화정 등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면서 사회 전체에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진정한 인식은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얻어진다는 이성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확산하였다. 여기에 다윈의 진화론 등 과학의 급격한 발전으로 자유 사상가와 절대적인 신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자 및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이 득세하며 종교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존재는 미약해졌으며, 사람들은 하느님을 따르는 신앙보다 세속에 더 빠져들었다. 
이런 와중에 교황 비오 9세는 이탈리아에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득세하면 기존의 종교적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염려하여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철회하였다. 이제 교황과 교황청은 험난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한 1845년부터 유럽 전역에 기근의 조짐이 보이자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전보다도 힘든 처지에 놓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성모님이 프랑스의 남동부에 위치한 라살레트에서 발현하셨다.

2) 성모님의 발현
20240319112045_1737110863.jpg1846년 9월 19일 라살레트의 가르가스산 중턱 초원에서 소를 돌보고 있던 소녀 멜라니 마티유 칼바(14세)와 소년 막시맹 지로(11세)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두 어린이는 초원에서 커다란 원형의 빛을 보았는데 점점 더 밝아지면서 그 크기가 커졌다. 그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할 때 원형의 빛이 열리면서 여인의 형상이 나타났다. 
처음에 여인은 바위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었다. 그다음 그들 앞에 일어선 여인은 순백색의 드레스에 발까지 내려오는 태양보다도 더 빛나는 노란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장미로 만들어진 면류관을 쓰고, 장미술이 달린 망토를 어깨에 걸치셨으며, 흰색 신발을 신고 장미꽃을 밟고 계시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여인의 가슴에 있는 십자가의 수평 막대 양 끝에는 못을 박는 망치와 못을 빼는 펜치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을 것인가 아니면 못을 뺄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인이 “내 아이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여기에 왔단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그런데 당신은 왜 계속 울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여인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세속에 빠져 살기에 서러워 울고 있단다”라고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말씀하셨으나 아이들이 알아듣지를 못하자 프랑스어와 지역 방언으로 번갈아 말씀하셨다. 여인은 “통회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이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하셨다”라고 하시며, 죄를 고백하고 악행을 멀리하며 하느님과 화해할 것을 요청하셨다. 여인은 “그러나 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악행을 저지른다면 기근이 들어 밀이 타 죽으며, 포도가 나무에서 썩고, 감자가 땅속에서 썩으며, 가축이 전염병에 죽고, 7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떨면서 부모 품에서 죽는 무서운 재앙이 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도할 것을 당부하면서 “시간이 없다면 적어도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쳐라”라고 하셨다. 여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두 어린 시현자에게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특히 멜라니에게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와 마지막 날(The Last Day)에 일어날 일 등 미래에 대한 종말론(묵시론)을 포함한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시면서 그 내용을 비밀로 유지하되 1858년 이후에는 공개해도 된다고 하셨다. 여인은 산 쪽으로 올라가시다가 빛 속으로 사라지셨다. 
두 어린이는 자신들을 고용한 주인와 인근 주민에게 성모님의 발현을 알렸으나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발현 장소로 끌고 가서는 거짓말을 인정하라고 협박을 했으며 제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감옥에 투옥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도 변함없이 일관되게 이야기를 하자 다음날 고용주는 두 어린이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루이 페랭 주임 신부에게 전달하였고, 신부는 발현한 여인의 메시지를 주교에게 보고하였다. 성모님이 황량한 라살레트의 산비탈에서 발현하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막시맹의 아버지는 두 달 후에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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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모님의 발현 이후
라살레트에서 발현한 성모님은 본인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으셨고 본인에 대하여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으셨다. 따라서 발현 초기 대부분의 자료에서 두 명의 시현자도 처음에는 대단한 성녀 정도로 20240319112452_1426586268.jpg생각했지 감히 성모님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도 시현자의 평소 행동으로 보아 성모님이 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거짓말이나 사기행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여인이 전달한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문맹자인 시현자가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예언과 묵시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그 여인이 성모님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1846년 9월 그르노블의 주교 브루이야르는 예비조사를 진행하였으며, 11월에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848년 6월에 성모님 발현과 관련한 최종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1846년 말 성탄절을 전후하여 여인이 예언한 모든 내용이 그대로 적중하였다. 감자가 땅속에서 썩었고 곧이어 옥수수가 썩는 등 거의 모든 작물의 수확이 실패하였다. 사료를 먹은 가축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포도가 필록세라의 공격을 받아 프랑스 전역의 포도나무가 말라 죽었다. 이어 콜레라가 강타하여 어린이 수천 명이 사망하였다. 이러한 극심한 불행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발현에 냉소적이고 의심을 보였던 사람들은 여인이 말한 예언의 정확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르노블의 주교는 성모님이 라살레트에서 발현하셨음을 인정하고 정확히 발현 5주년이 되는 1851년 9월 19일에 라살레트에 있는20240319112045_1997445832.jpg 두 어린 목자에게 축복받은 성모님이 나타나신 것은 확실하다고 선언하며 발현을 공식적으로 공인하였다. 1852년 5월 주교는 라살레트까지 직접 올라와 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아무것도 없던 땅에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
교황 비오 9세가 1846년 6월 교황이 된 직후 라살레트에서 성모님이 발현한 것과 성모님의 비밀 메시지가 교황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볼 때 라살레트의 성모님이 교황 비오 9세에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용기와 지혜를 주셨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교황 비오 9세는 재임 기간 동안 루르드를 비롯하여 교황청의 인정을 받은 성모님의 발현을 무려 5번이나 직접 접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 비오 9세의 성모님에 대한 공경은 역대 교황 중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교황의 성모님에 대한 강렬한 성심은 1854년 12월에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바위에 앉아 울고 계시는 성모님(좌) 가르가스산 중턱에 위치한 발현 성지(우)
- 두 어린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성모님(좌) 성모님의 가슴에 있는 십자가의 수평 막대 양 끝에 있는 망치와 펜치(우)
- 정면의 대성당(1865년 봉헌)과 후면의 숙박시설(좌) 대성당 내에 보관되어 있는 성모님이 앉아 계셨던 바위(우)
-기적의 샘. 성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 계셨던 바위 아래에 있던 샘에서 샘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마신 환자가 치유되는 기적이 수없이 일어났다.
- 발현 당시 시현자 멜라니와 막시맹(좌) 말년의 멜라니. 멜라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이탈리아 열정의 딸 수도회의 창설을 돕는 등 시현자에 걸맞은 생활을 하였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