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성인 이야기
어버이를 수호하는 성인들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수호성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사도신경(또는 공인된 다른 신경)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면서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사도신경에는 우리 믿음의 조목(신조)들이 들어 있고, 그중에는 ‘모든 성인의 통공’이 있다. 이에 이승에 사는 우리는 천상 하느님 나라에 있는 성인들과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더불어 상통하고 기억하며 기도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성인들이며 연옥 영혼들과 공유하는 강한 유대감과 연대의식이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회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성인들의 전구 또는 중개가 필요함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 삶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길목과 고비에서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수호성인 또는 주보성인을 정해 두었다. 그러기에 현대에 이르러 인터넷의 수호성인(세비야의 성 이시도로)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에는 다양하고 많은 수호성인들이 대기 중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성인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정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수호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이들이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연대감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표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예비 엄마의 수호성인, 성 제라르도 마젤라(축일 10월 16일)
20240319111515_391644037.jpg18세기에 이탈리아 남부의 무로에서 태어난 성인은 아버지를 여읜 뒤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원했으나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주교관에서 일하다가 19세에 양복점을 열었다. 그리고 22세 때 마침내 구속주회에 수사로서 입회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고, 26세 때 이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 알퐁소에 의해 수도서원까지 하게 되었다. 성인은 예언, 탈혼, 환시, 초자연적인 천상 지식,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일과 같은 특별한 은사들을 받았고, 그리하여 수녀들의 영성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고 거룩한 아이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기도했으며 특히 성체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다고 한다. 그러했기에 성인의 어머니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 태어난 아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성인이 수도회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고향을 떠나 주교관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수도원에 들어갈 때까지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정성껏 보살폈다. 그리고 선종하기 1년 전에는 임신한 한 여성으로부터 자신과 성인 사이에 불미스런 관계가 있었다는 고발을 당했다. 그러나 성인은 한 마디 변명도 없이 그 치욕을 인내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 여성은 자신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런 곡절로 해서 성인은 남성임에도 특이하게 아기 출산의, 그리고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다자녀 가정 부모들의 수호성인, 성 아달발도(축일 2월 2일)
성 아달발도는 7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그리스도인 귀족으로서 왕의 궁정에서 일을 했고, 야망에 불타서 반란을 일으키는20240319111515_1390830713.jpg 사람들을 진압하기 위해 여러 차례 출정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출정한 지역의 귀족과 친분이 두터워졌고, 마침내 그의 딸인 성녀 릭트루다(축일 12월 6일)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아내 친척들의 적대감 때문에 축복과 기쁨 속에 치를 수 없었지만,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지내며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다. 이 부부는 틈나는 대로 병자를 방문하거나 범법자들을 개종시키는 일을 도왔다.
그런데 성인은 또다시 반란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제는 아내의 친척들과 싸워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이 난처한 상황에서 부부가 모두 고통스러워하던 중에 성인이 처가 쪽 친척에 의해 살해당했다. 성인 부부는 신앙심 깊은 성가정을 이루어 살았고 자녀들을 훌륭한 가톨릭 신앙인으로 키웠다. 성인과 사별한 아내는 자녀들이 장성한 뒤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성인 부부의 네 자녀들은 나중에 모두 교회의 성인 성녀가 되었다. 그리고 성인의 할머니와 처제 역시 성인들이다.
성인은 적대자들의 손에 살해당했지만, 투철한 신앙 정신 때문에 순교자로서 공경받는다.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모범적인 성가정을 이루며 살았기에 다자녀를 둔 부모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의붓 어버이들의 수호성인, 성 레오폴도(축일 11월 15일)
20240319111808_1224496366.jpg12세기의 성 레오폴도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독일로 가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23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의 딸인 아녜스와 결혼하였다. 성인과 아녜스는 자녀 18명을 두었고, 거기에다 아녜스가 전 남편과 사별하기 전에 낳은 아들 2명까지 있었다. 성인은 모두 2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웠다.
신심이 깊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알려진 성인은 오스트리아 비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수도원들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4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는데, 온전히 그리스도인다운 마음가짐으로 일관했기에 백성으로부터 ‘착한 사람(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자신의 친자녀들뿐 아니라 아내가 이전에 결혼해서 낳은 아들들까지 품어서 잘 키웠기에, 성인은 의붓 어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을 받는다.

과부들의 수호성인, 폴리뇨의 성녀 안젤라(축일 2월 28일)
13세기에 이탈리아 폴리뇨에서 태어난 성녀는 부유한 사람과 결혼해서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았다. 결혼 초기에는 현세적이고 하찮은 데 마음을 빼앗겨서 살았으나, 이내 그런 삶을 뉘우치고 속죄하며20240319111515_1779103646.jpg 지냈고, 나중에는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이 되었다. 기도와 참회를 거듭하며 지내던 성녀는 초자연적인 환시를 체험했고, 그럼에도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주님과의 신비로운 결합의 표징인 오상까지 받았다. 61세의 나이로 선종한 성녀의 유해는 폴리뇨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안치되었는데, 그곳에서 성녀의 중개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시성되지 않았음에도 17세기 말에 성녀에 대한 공경이 인노첸시오 교황에 의해 승인되었고, 2013년에 이르러서야 성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두 번째 기적에 대한 심사를 면제받아 시성되었다.
성녀는 남편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또한 자녀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고통도 겪었다. 그러나 성녀는 프란치스코회 아르놀도 수사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시련을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기도와 보속, 그리고 주님과 신비로이 결합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이렇듯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겸손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았기에, 성녀는 특별히 남편과 사별한 과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