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뭐라꼬예?
판관기의 마지막 이야기:
왕조 창설의 필요성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 대구대교구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던 시대의 우상숭배
삼손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미카의 신당’과 ‘단 지파의 이야기’(17-18장), ‘벤야민 지파의 이야기’(19-21장)는 판관기에 부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에는 판관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민족의 억압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판관들과 같은 소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들이 판관기의 부록과 같다는 말은, 유배시기 이후에 판관기를 정리한 편집자가 왕정에 호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기존의 판관기에 이를 덧붙인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판관기의 편집자는 ‘왕조 창설의 필요성을 강조할 의도’를 가지고 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 왕조가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무정부적인 혼란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판관기 편집자의 이러한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다음 구절입니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판관 17.6) 판관기는 같은 말을 18장 1절과 마지막 구절인 21장 25절에서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판관기의 후반부는 먼저 17장과 18장을 통해 하느님의 율법으로 금지된 (우상의) 신상들을 만들어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는데, 이는 일찍이 모세오경에서 제시된 율법의 규정을 말합니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을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탈출 20,3-5)
“주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새겨 만든 우상이나 부어 만든 우상, 곧 장인의 손으로 만든 것을 은밀한 곳에 두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신명 27,15) 
판관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우상숭배의 잘못을 새삼 지적하며, 이러한 잘못이 판관도 왕도 없는 시대에는 더 쉽게 행해졌음을 강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主)님, 곧 나의 주인님, 나아가 나의 임금으로 모시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아닌 그 무엇도 따르기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당이나 점쟁이, 철학관 혹은 용한 스님을 찾고, 굿까지 벌이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사주관상과 점괘를 보고, 궁합과 택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는 우상숭배의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은 하느님의 말씀, 우선적으로 성경에 있음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독서와 연구, 그리고 묵상과 관상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하느님에 대한 참된 숭배가 아닐까요?

미카의 헛된 꿈과 단 지파의 잘못된 처신
에프라임 산악지방에 살고 있던 ‘미카’라는 사람의 어머니는 아들 미카가 돌려준 은 1,100세켈에서 200세켈을 떼어내어 조각 신상과 주조 신상을 만들었고, 미카는 이를 자신의 집에 모셨습니다. 미카는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신당에 에폿과 수호신들을 만들어 모시고서 한 아들에게 사제직무를 맡겼는데, 이를 판관기는 임금이 없어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데서 야기된 잘못으로 보고 있습니다.(17,6 참조) 
그러던 중 미카는 우연히 자신의 집을 찾아온 이른바 ‘순회 사제 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떠돌이 레위인에게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고 자신의 사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레위인이 내 사제가 되었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나에게 잘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판관 17,13 참조) 미카는 그로써 자신이 하느님의 복을 받을 행위를 하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요, 과연 레위인 사제는 미카가 기대했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판관기 18장은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판관기는) 이제 단 지파가 땅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전하면서 왕의 통치가 없었던 시대에 지파에서 행해진 제의적인 잘못도 함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던 그 시대에, 단의 자손들은 그때까지도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에서 상속지를 얻지 못한 채 떠도는 신세였습니다. 왜일까요? 단 지파 사람들은 벤야민 지파 영토의 서쪽 땅을 배당받았는데, 아모리인들에게 밀려나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산악지방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단 씨족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판관 삼손이었습니다) 
단 지파의 자손들이 자기들이 살 곳을 찾던 중 에프라임 산악지방에 있는 미카의 집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었고, 미카가 고용한 사제도 만났습니다. 미카의 사제에게 자신들이 지금 가는 길이 성공할 것인지를 하느님께 여쭈어 주길 청하였던 그들은, 그에게서 “평안히 가시오, 그대들이 가는 길은 바로 주님 앞에 펼쳐져 있소.”(판관 18,6) 라는 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길을 떠나 ‘라이스’라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은 요르단 강의 근원지 중 하나로, 사람들이 태평하게 살던 넓은 그곳은 과연 그들이 살기에 좋은, ‘세상에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는 땅’이었지요. 
이때 그들은 라이스로 진격하면서 미카가 소유했던 에폿과 수호신들과 신상들까지 가져갔고, 이를 만류하는 미카의 사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우리를 따라나서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와 사제가 되어 주시오. 한 집안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씨족의 사제가 되는 것이 좋소?”(판관 18,19) 마음이 흐뭇해진 미카의 사제는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잠시 뒤 미카가 이웃 사람들을 모아 단의 자손들을 따라가 길을 막아서고 따지자 단의 자손들이 말했습니다. “아무 말 하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성질 급한 사람들이 당신들을 쳐서, 당신과 당신 집안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가 있소.”(판관 18,25) 미카는 자신보다 강한 그들을 보고 눈물을 머금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신당을 꾸미고 개인적으로 사제를 두면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입니다. 
단의 자손들은 라이스를 점령한 후 성읍을 다시 세우고 그 이름을 자기들의 조상 이름을 따서 ‘단’으로 바꾸고 - 아마도 기원전 734년경 아시리아로의 유배시기까지 –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단에 성소를 꾸미고 미카의 조각 신상을 그곳에 두고 섬겼습니다. 단의 성소의 출발점은 미카의 신당이었던 것입니다.
미카의 신당에 얽힌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과 나라가 공인하는 성소가 없는 상태에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린 사적(私的)인 제의(祭儀)가 쉽게 행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듯합니다. 한편 자신의 사제를 고용했으니 축복이 있으리라고 기대한 미카에게는 아니었지만 약속의 땅을 찾아 나선 단의 자손들에게는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했다는 데서 사제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이 한 개인에게는 아니더라도 약속의 땅을 찾아 나선 공동체에게는 계속됨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이렇게 한 개인에게 독점적일 수 없는 공동체적인 성격의 것을 지닙니다. 비록 여러모로 부족한 나일지라도 내가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함께하면, 그 공동체에 내려지는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는 하느님 축복의 엄연한 대상자임을 잊지 맙시다. 하느님의 축복은 비록 조금이라도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이에게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