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자리_광주대교구 옥암동성당 이부전 세실리아
‘선교’ 사명에 온몸 바쳐
장태섭 토마 광주 Se. 명예기자

20240319110056_1922739114.jpg“한없는 갈등과 오만 속에서 행복이라는 게 없었는데도 그게 최선의 생활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온 저에게 온전히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의 햇살을 내려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남은 저의 모든 인생을 바쳐도 부족할 것 같아요.”
세상살이에 지쳐 허덕이며 살아가던 삶에서 이제는 선교의 사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광주대교구 목포 옥암동성당(주임신부 박홍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무염시태 꼬미씨움(단장 서정웅 안드레아) 직속 샛별의 모후 Pr. 이부전 세실리아 단원을 소개한다.
세상 속에서 허송세월하였지만, 어려운 고민 끝에 레지오에 입단하고 이제부터는 주님과 성모님께 드려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는 세실리아 단원. 그는 많은 어려움과 상처를 겪으면서 기도, 선교, 봉사(나눔)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삶의 마지막 사명이라 판단하고 말씀 속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많은 기도와 준비 속에서 한쪽 눈은 온통 예비자 입교 대상자로 보이고, 다른 한쪽 눈은 회두와 레지오 입단자로 보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넌 할 수 있단다”라는 성모님의 말씀이 세실리아 단원의 뇌리를 스쳐가면서부터 결심했다. 직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직장에 방문하는 손님에게 가장 먼저 종교를 묻고 선의를 베풀며, 없는 자와 함께 시간을 가졌다. 공인 중개사로 활동하면서 불우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중계 수수료를 받지 않은 것도 수차례, 아껴주고 사랑하며 무엇이 부족하고, 아픈 곳은 어디인지 물어 어루만져 주면서 기도의 힘으로 한 해 동안 평균 13~14명씩 꾸준히 입교시킬 수 있었다.

입교 대상자와 한마음 되려는 노력으로 한해 13~14명씩 입교시켜
2007년 레지오 마리애 도입 54주년 기념행사에서 선교부분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세실리아 단원에게 오랫동안 선교 활동을 하며 많은 분을 입교시킨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특별한 선교방법은 없지만 모든 대상자를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 선교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입교 대상자를 만나면 저의 마음과 대상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다 보니 입교 대상자도 쉽게 마음을 열어 주더군요”라며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을 알려준다.
세실리아 단원은 그동안 입교시킨 많은 분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20240319110056_1040805229.jpg“제가 선교 활동을 하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노부부는 아내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3개월 시한부를 선고받고 퇴원한 분입니다. 적당한 날을 잡아 찾아가 위로도 드리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이후로도 수차례 찾아가 입교를 권했지만 이웃 천주교 신자의 행위를 못마땅해하며 또 거절하였지요. 다시 수녀님과 동행하여 설득하는 도중에 아내분께서 ‘우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와서 애원하는데 그냥 들어줍시다’라며 남편에게 요청하여 드디어 승낙하였고, 예비자 입교 약속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분들의 집과 저의 집은 시, 군을 넘어 적잖은 거리였지만 두려움 없이 승낙받음에 감사하며 매주 교리공부 시간에 차량 봉사에 동행하여 8개월의 교리공부를 마치고 마침내 세례를 받으셨어요. 그 후 미사에 기쁘게 참례하며 처음 선고받은 3개월보다 3년 6개월을 더 사시다가 장례미사와 함께 두 분 다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어요. 장례 후 가족들이 고마워하며 쉬는 가족들도 회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왔는데 지금까지 입교시켰던 많은 분 중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에요.
또 한 번은 감리교회를 35년간 열심히 다녔던 교인이 저희가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며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레지오 입단까지 하였던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수년의 냉담 속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자매를 만나 위로의 마음으로 동료처럼 함께 하였는데 그 자매는 보살핌에 감동하여 신부님 면담과 고해성사로 주님의 새로운 자녀가 되셨어요. 그 자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것은 주님께서 저를 만나게 해 주신 것이라며 감사하였고, 지금은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도 참례하며 매일 기쁘게 살아가고 계세요.”

꾸준한 입단 권유로 이뤄낸 3번의 Pr. 분단
그는 본당에서 선교분과 일을 십여 년 하다 보니 교우들과의 교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레지오 확장에 나서 새 신자부터 기존 신자까지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시키려고 노력해 단장으로서의 영예인 쁘레시디움 분단을 3번이나 하게 되었다. 
꾸준하게 활동해 온 세실리아 자매님을 지켜본 소속 꼬미씨움 단장의 칭찬이 이어졌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겨우 비대면으로 주회합을 하였지만 대면 주회합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방역 당국에서 조금씩 허용하면서 4명까지 대면이 가능할 때 세실리아 단장님은 이를 놓치지 않고20240319110056_1944937739.jpg 신부님께 건의하여 단원 중 4명은 주회합실에서, 4명은 옆 주회합실에서 주회합을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신 분이십니다.” 
물론 다른 쁘레시디움도 본받아 점차 대면 주회를 하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코로나 기간 중 인근 성당의 꾸리아에서는 단원 수가 급격히 줄고 해체하는 쁘레시디움이 있었으나 옥암동 꼬미씨움은 여전히 활동이 활발하다.
“세실리아 단장님은 기본에 아주 충실하신 분입니다. 본인의 주회 참석은 물론 간부들의 출석률도 99%이고, 4간부의 평의회 출석률은 100%입니다. 코로나 이후 레지오 활동이 많이 흐트러졌지만 샛별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주회 모습에서는 여전히 생동감이 느껴지고 단장님이 직접 선택한 샛별처럼 모두 빛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라고 꼬미씨움 단장은 말한다. 
“세상에 충실해 어리석음과 교만과 자만에 빠져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저에게 회개의 은총을 주신 주님께 매일 감사드리며, 남은 삶의 모든 시간을 사명인 선교 활동에 온몸을 바칠 생각”이라는 단호함에서 주님께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